누구나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꾼다. 현실이 점점 각박해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 커진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불로소득의 삶, 한 번의 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는 인생 역전 등을 꿈꾸는 이유다.
만약 수술 한 번으로 더 나은 삶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다운사이징’(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관객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주인공 폴 사프라넥(멧 데이먼)을 내세워 그 결정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보여준다.
‘다운사이징’은 인간의 부피를 0.0364%로, 무게를 2744분의 1로 줄이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수십 년 전부터 지구의 인구과잉 사태를 예상한 연구자들이 오랜 개발 끝에 ‘인간축소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이다. 단순히 작아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실에서의 1억원은 소인 세계에서 120억원의 가치로 급등한다. 월세 내기도 힘든 현실과 달리,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으면 커다란 저택에서 취미 생활에 집중하며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다.
폴 사프라넥은 긴 고민 끝에 수술 받는 것을 선택한다. 수술을 받은 주변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아내의 바람대로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대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좌절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도, 10년째 같은 식당에서 먹는 저녁도 지겹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삶보다 다운사이징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는 아내를 설득해 뉴멕시코에 가서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진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다운사이징’은 웃음과 감동이 있는 평범한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번번이 벗어난다. 폴이 다운사이징 수술을 받게 되는 과정까지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영화는 그 이후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 불가능한 세계로 안내한다. 마치 다운사이징 수술 이후 원래의 몸으로 돌아올 수 없는 폴처럼 낯선 사람, 낯선 세계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하는 과감한 전개가 ‘다운사이징’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 우리가 사는 세계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게 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폴이 12.7㎝의 몸으로 살아가는 소인 세계는 그 세계만의 룰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삶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수술 전에는 위에서 작아진 ‘소인’들을 내려다보던 시선이, 수술 후에는 ‘거인’들을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바뀌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대신 폴은 이전에 바라보지 않았던 세계로 눈을 돌린다. 파티와 술을 즐기며 향락에 빠진 부자들과 가난한 이민자들, 진지하게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세계를 경험하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영화의 익숙지 않은 전개가 불편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 어쩌다 이런 이야기로 전개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뜬금없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 끝에 감독의 메시지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엔 꼭 이런 방식이어야 했는지 실망스러운 마음도 든다. 영화 속 이야기와 주인공의 선택을 어디까지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가 다뤘던 현실에 대한 의문과 풍자를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감독 벤 스틸러) 식의 과감한 전개와 아름다운 영상으로 풀어냈다. 폴 사프라넥 역을 맡은 멧 데이먼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영화 스태프를 꿈꿨던 신인 배우 홍 차우는 베트남 반체제 인사 녹 란 트란 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쳤다. 그 결과 제75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까지 올랐다. 오는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