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조금 더 쉬울 수 없나요 [기자수첩]

경제, 조금 더 쉬울 수 없나요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1-12-30 06:00:22
“조금 더 쉽게 설명할 수 없을까요?”

올해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취재원들의 멋쩍은 웃음이 돌아온다.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푸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

경제팀에 처음 들어온 날, 80쪽에 달하는 한국은행 자료를 받았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 생산자물가, 경상수지 등 모르는 단어를 표시하니 형광펜으로 안 칠한 곳이 없다. 문제는 사전의 해설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로 시작해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통화가 매일 계속됐다. 20분 넘게 같은 설명을 반복한 적도 있다.

기사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에 뜻을 붙이기 시작했다. RBC(지급여력)비율이 무엇이고 어떤 지표를 의미하는지, 기사에 용어가 나올 때마다 달았다. RBC비율은 모든 계약자가 한꺼번에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이를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 수치다. 높을수록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이 양호하다. 용어를 풀었으니 기사가 조금 쉬워졌을까. 기사를 읽은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고 물었다. 그 뒤로 통화할 때면 질문 하나를 덧붙였다. ‘보험료가 오르나요?’ ‘소비자 혜택이 줄어드나요?’ 취재원들은 규제 결과가 즉각 나오진 않는다며 당황해했지만, 경향이라도 한마디 넣으면 독자가 쉽게 읽지 않을까 바득바득 물어본 기억이 난다.

소비자도 자료는 어렵다. 특히 보험 상품 설명서는 암호 수준이다. 용어의 어려움은 피해로 이어진다. 긴 시간 이어진 즉시연금 소송이 그 예다. 즉시연금은 보험료 전액을 한 번에 납입하고 다음 달부터 매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 상품이다. 약관을 두고 소비자와 보험사가 소송에 붙었다. 똑같은 약관을 두고 재판부마저 판결이 갈렸다. 약관 해석에 따라 총 1조원대의 보험금이 소비자에게 갈 수도,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

보험사 승소 판결을 본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분노했다. “재판부마저 해석이 갈리는데 보험 가입자들은 오죽하겠냐. 어려운 설명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너무 많다. 보험사는 쉬운 용어를 써야 한다”

기자는 취재원에게 몇 번이고 물어볼 수 있지만, 소비자가 물어볼 곳은 한정적이다. 보험설계사와 카드모집인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는 소비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화면과 ARS음성으로 어려운 상품 용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용은 보지 않고 무작정 동의에 체크하고 보는 지금의 개인정보동의처럼 보험에 가입하게 될지 모른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 취재원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두 번째 취재원에게 물어보고, 둘의 설명을 합쳐 쉽게 푼 적이 있다. 자료 또한 여유를 두고 써야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대체하려는 의지가 생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경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가 됐다. 독자와 소비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가 쓰는 기사와 자료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한 번 더 고민해볼 때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손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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