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청량산 일장천 약수터 부근. 남한산성 수어장대를 1km 앞둔 산 능선에 불에 그을린 나무들이 넘어져있다. 나뭇잎은 푸른색을 잃고 까맣게 시들었다. 전날 발생한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이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온통 잿빛이었다. 숯덩이가 된 나무에서는 탄내가 풍겼다. 바닥을 밟으면 재가 피어올랐다. 큰 불길은 잡았지만, 여전히 잔불이 남아 곳곳에서 흰 연기가 새어나왔다. 일부 나무 계단과 축대목(나무벽)은 파괴되거나 불탔다. 하늘에는 정찰 활동을 벌이는 헬기가 오갔다. 잔불 감시작업도 한창인 듯, 진화 장비인 등짐 펌프와 소방 갈퀴가 놓여있었다.
4일 오후 7시43분 경기 하남시 남한산성 인근 청량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산불은 발생 초기 청량산의 경사와 바람으로 인해 빠르게 확산했다. 소방당국은 소방 장비 30여 대와 인력 570여 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3시간57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축구장 10개 면적인 산림 7㏊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근 주민들은 산불이 완전히 진화되기 전까지 공포에 떨었다.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와 화재 발생 장소가 불과 300m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하남시청은 “산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즉시 대피하라”는 주민 대피령까지 발령했다.
인근 아파트 입주민 김모씨는 “창문을 여니 시뻘건 불길이 하늘에 가득 차 있었다”며 “너무 두려운 나머지 지갑과 귀금속부터 바리바리 챙기게 되더라. 불이 진화될 때까지 한숨도 못 잤다”라고 말했다. 이어 “청량산 근처에 남한산성이 있지 않나. 수어장대까지 불길이 확산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산불로 인한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데에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도 있었다. 연기가 수 킬로미터까지 퍼진 탓이다. 학암동에 거주한 지 8년째라고 밝힌 50대 여성은 “밤이라서 진화 작업이 제대로 될지 걱정이 많았다. 재난안전문자도 몇 개나 왔는지 모르겠다”라며 “옥상에 올라가서 동태를 살피는 주민들도 여럿이었다. 불이 꺼진 이후에도 매캐한 냄새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불 예방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잔불이 남아 있어서 진화 작업을 돕고 하산하는 중”이라며 “아직 산불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시민 의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작은 불씨를 산에서 만드는 건 대부분 인간이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발화지점과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합동감식에 나설 예정이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원인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며 “경기소방청과 합동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