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에 울고 웃고…‘아이돌 안전지대’ 된 이영지

술 한 잔에 울고 웃고…‘아이돌 안전지대’ 된 이영지

기사승인 2022-08-18 06:00:15
유튜브 예능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을 진행하는 래퍼 이영지. 유튜브 캡처

21세 래퍼 이영지는 울분에 찼다. 20대와 함께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술자리를 가져본 경험이 열 번이 채 안 돼서다. 이런 이영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유튜브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다. “법의 둘레 안에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는 방송인 유재석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채, 이영지는 손님들을 술과 광란의 세계로 이끈다.

소주, 고량주, 칵테일 등 화려한 주종을 자랑하지만 술은 그저 거들뿐. 벽에 걸린 “합법적 망나니”라는 문구처럼 이영지는 광기에 가까운 흥으로 손님들을 쥐락펴락한다. 자신보다 고작 며칠 먼저 데뷔한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수빈에게 냅다 “선배님”이라며 큰절을 올리고, “낯가림을 하냐”(낯선 사람을 어색해하냐)는 그룹 몬스타엑스 멤버 형원의 질문에는 “낯(외모)을 가린다”고 너스레를 떠는 식이다. 덕분에 손님들은 금세 무장 해제돼 속내를 술술 털어놓는다. 그룹 세븐틴 멤버 호시가 소속사와 재계약한 배경을 설명하다가 “우리 회사 너무 좋아해”라며 별안간 눈물을 터뜨렸을 정도다.

격식 없는 방송에서 나오는 색다른 재미는 고스란히 조회수로 이어졌다. 지난 12일 공개된 형원의 출연 분은 닷새 만인 17일 조회수 500만 뷰를 뚫었다. 평소 이영지와 절친한 사이인 그룹 있지 멤버 채령이 출연한 방송은 조회수 1000만 뷰 돌파를 눈앞에 뒀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 좋아하는 가수를 초대해 달라는 팬들 요청이 폭주하자 이영지는 SNS에서 “이미 (남은 방송) 게스트들 전부 섭외 완료됐다”며 “열화와 같은 성원에 제작진 일동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고 알렸다.

그룹 몬스타엑스 멤버 형원이 출연한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은 공개 5일 만에 조회수 500만 뷰를 넘었다. 유튜브 캡처

업계는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의 인기 비결을 ‘차별화’에서 찾는다. 가요관계자 A씨는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은) 촬영장 분위기부터 TV 방송과는 다르다”고 귀띔했다. 스태프 수십 명이 투입되는 TV 녹화와는 달리 “소수정예 스태프로만 촬영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는 전언이다.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선 이영지와 초대 손님뿐 아니라 PD, 작가 등 제작진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또 다른 가요계 종사자 B씨는 “제작진이 출연자 바로 앞에서 호응하고 경청하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덕에 출연진도 편안한 상태로 촬영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출연자가 마음 놓고 속 얘기를 꺼낼 수 있다는 점도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의 장점이다. 상대가 털어놓은 고민에 순식간에 빠져들어 공감하는 이영지의 진행 덕에 출연자들은 나름의 인생철학을 진지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룹 아이즈원 출신 예나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 조금 지친다”는 이영지를 “‘이 사람은 당연히 이래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나의 좋은 점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하면 내게도 좋은 시너지가 난다”고 위로했다. 형원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건 뭘까”라는 물음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답하며 자신의 ‘행복론’을 펼쳤다. 이영지가 K팝 팬덤 사이에서 ‘아이돌 안전지대’로 불리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TV 방송은 틀이 정해진 느낌이 강한 반면, 유튜브 콘텐츠는 현장성이 강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툭툭 던질 수 있을 만큼 분위기도 편안하다”고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리얼한 방송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가진 파급력 또한 K팝과 화학 작용을 냈다고 정 평론가는 봤다. 그는 “유튜브는 TV 등 다른 매체보다 접근성과 확산력이 좋다. 때문에 콘텐츠 제작사뿐 아니라 K팝 기획사들도 팬덤 형성을 목적으로 유튜브 예능에 더 집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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