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단독면담이 성사됐지만, 양측은 면담 내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렸다.
양측은 2일 오후 3시30분부터 시청 본관 8층 간담회장에서 단독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는 오 시장,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참석했다.
오 시장은 “더는 지하철을 세우거나 지연하는 형태의 시위는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고자 만나자고 했다”며 “여러 차례 시위를 통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알려졌으니 극단적 형태의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촉구했다.
지하철 시위가 범법 행위라는 점도 짚었다. 오 시장은 “전장연은 굉장한 강자가 됐다”며 “정시성을 생명으로 하는 지하철을 84번이나 운행 지연시켰고, 철도안전법을 엄청나게 위반한 중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하철 시위는 출근길 보장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시장으로 용인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탈시설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2000억 가까이 올해 증액했음에도 중앙정부가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지하철 공간만큼은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박 대표는 오 시장의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강조하며 맞섰다. 서울시·정부가 장애인 복지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 장애인이)지난해 9호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죽은 것은 서울시의 관리 책임”이라며 “서울시에 사과해 달라고 했지만, 서울시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국가가 장애인의 죽음을 하찮게 여긴 결과”라며 “시민들을 볼모로 잡았다고 하는 주장은 의도적인 갈라치기이고,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탈시설 예산의 필요성도 피력했다.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비장애인들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주장이다. 탈시설 예산 확보에 대한 근거로는 UN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을 들었다. 해당 조문에는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생활과 통합을 지원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개별 지원을 포함해, 장애인은 가정 내 지원서비스, 주거 지원서비스 및 그 밖의 지역사회 지원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기재부)의 책임 있는 예산 배정을 요구했다. 박 대표는 “지하철 이동권뿐만 아니라 저상버스 도입, 시외 이동버스 등이 지역 간 매우 불평등하다”라며 “무게로 치자면 기재부의 책임이 무겁다. 진짜 강자인 기재부에 (예산 배정을) 요청해달라”고 호소했다.
오 시장은 전장연이 주장하는 탈시설에 대한 공감을 표하면서도 “재원이 있으면 어떤 정책이라도 이상적인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투자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시간과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는) 전장연이 추구하는 탈시설에 대해 충분히 예산 허용 범위 내에서 의지를 갖고 있다”며 “그런 의지를 믿고 지켜봐 달라”고 요청했다.
지하철 지연이 뒤따르는 시위를 반대하는 입장은 끝까지 고수했다. 오 시장은 “전장연은 장애인 탈시설, 이동권을 보장받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서울시와 정부가 챙겨야 할 사회적 배려 대상이나 약자가 수백, 수천 종류에 달하는 점을 이해해달라”며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지하철을 멈추는 일은 멈춰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양측간 면담은 예정된 30분을 넘겨 20분간 더 이어졌지만, 서울시와 전장연 모두 상대방의 요구에 확답하지 않은 채 대화를 마무리했다.
박 대표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 면담 내용은 돌아가 신중하게 검토해 보겠다”며 “내일 아침 8시에 혜화역에서 선전전이 계획되어 있는데 탑승 시위를 할지 말지는 그 장소에서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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