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별세

‘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 별세

기사승인 2009-03-29 17:16:01
[쿠키 경제] ‘비운의 기업인’ 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이 29일 오후 별세했다. 노환에 폐렴이 겹쳐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영면했다. 향년 88세.

양 전 회장은 1949년 부친과 함께 부산에 국제고무공업사를 설립, ‘왕자표 신발’을 생산했고 6·25 전쟁 때 군수품 생산으로 큰 돈을 모았다. 63년에는 신발류 및 비닐제품 생산업체 진양화학을 세웠고 70년대 초 신발 수출 붐을 타고 눈부시게 성장했다.

이후 성창섬유, 국제상선, 신동제지, 동해투자금융 등을 연이어 창업하고 동서증권, 동우산업, 조광무역, 국제토건, 국제종합엔지니어링, 원풍산업 등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고무신 공장에서 시작해 80년대 재계 서열 7위인 국제그룹으로 키운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었다.

양 전 회장은 그러나 85년 한순간에 몰락했다. 그해 2월 주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은 자금난에 빠진 국제그룹의 정상화 대책을 발표한 뒤 곧바로 그룹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국제상사는 한일합섬에, 건설은 극동건설에 매각됐고,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국제그룹은 일주일만에 공중분해됐다.

국제그룹의 해체에는 무리한 기업 인수, 과도한 단기 자금 의존, 해외 공사 부실 등 내부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5공화국 군사정부에 밉보여 희생됐다는 분석이 정설로 받아들여 진다. ‘국제그룹이 마지못해 3개월짜리 어음으로 10억원을 헌금으로 상납했다’, ‘85년 2월 총선에서 부산지역 상공인 대표였던 양 회장의 협조가 부족했다’ 등 국제그룹과 신군부간 껄끄러운 관계를 보여주는 소문들은 여전히 시중을 떠돈다.

양 전 회장은 정권이 바뀐 뒤 국제그룹 해체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93년 7월 승소했다. 그러나 그가 흩어진 자신의 기업들을 되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흐른 뒤였다. 양 전 회장은 94년 한일합섬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인도청구소송에서 패소했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결국 그룹 재건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장남 양희원 ICC 대표와 사위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이현엽 충남대 교수, 왕정홍 감사원 행정지원실장 등이 유족이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안실 20호(02-3010-2631),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9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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