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 무산] “대량해고 없을것”…전문가 22명 설문조사

[비정규직법 개정 무산] “대량해고 없을것”…전문가 22명 설문조사

기사승인 2009-07-01 1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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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이 일단 수포로 돌아갔지만 법 개정 요구는 물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해법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본보는 노동계와 경영계를 제외한 학계와 국책연구기관 전문가 22명을 상대로 이메일과 전화를 통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규직 고용보호 규제의 완화와 차별시정제도의 효율화를 요구하며 결국 어떤 형태로든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량 해고 없겠지만 일부 고용 조정 불가피"='7월부터 대량 해고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2명이 '해고보다는 대부분 대체되거나 외주로 돌릴 것이지만, 일부 고용 조정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6명은 '과장된 주장이다. 고용 조정은 늘 일어나고 있는데다 중소기업에 여유 인력이 없으므로 고용 규모가 그다지 줄지 않을 것'이라는 데 손을 들었다. 나머지 4명만 '그럴 것'이라고 응답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민간기업보다 공기업, 병원과 대학교 등 사회서비스업에서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기업 경영합리화지침 등이 비정규직 해고의 빌미가 되는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이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용 기간 연장이나 유예 필요성에 대해서는 찬성 10명, 반대 12명으로 팽팽했다. 반대 의견 가운데 2명은 1년 정도 법 적용 유예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법 조항이 발효됐으니까 일단 지켜보다는 입장이었다. 찬성 중 4명은 사용 기간 제한 조항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남용 방지와 차별 시정 절차 조항에 대해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각각 4명에 그쳤다. 남용 방지에 대해서는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3명, '하고 있지만, 효력은 약하다'는 응답이 16명이었다. 차별 시정 조항에 대해서는 7명이 '못하고 있다', 13명이 '하고 있지만 효력은 약하다'에 손을 들었다. 응답자 가운데 7명이 차별 시정의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차별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는 주체에 노조나 근로자대표 및 인권단체 등 제3자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차별을 하는 사용자에 대한 적극적 제재조치, 즉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무급제의 도입,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임금 유연성 확보, 고용안정서비스 인프라 확대, 비정규직 직업훈련 강화 등 노동시장적 접근에 대해서는 10명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약간 기여할 것이다'라는 응답도 10명이었다. 나머지 2명은 '도움이 안된다'고 응답했다. 최영기 위원은 "지금까지의 비정규직관련 논의에서 시급한 노동시장적 해법이 빠져 있다"면서 "예컨대 임금차별을 없애기 위한 직종별 표준 임금테이블 작성 기초조사 등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종합적 전략적 접근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제도의 개선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고 노사 관행의 개편, 노동시장적 접근 등이 필요한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국대 김태기 교수는 "노사관행 개혁, 입법 정책 및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정부지출 확대의 3개 과제가 나란히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장기적으로는 기간 제한을 폐지하고 다양한 고용 형태를 인정하되 새로운 형태의 규제를 위한 공정 노동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한 학자도 5명이나 됐다. 이인재 인천대 교수는 "정규직 고용 보호 규제의 완화나 노동조합의 교섭력 균등화를 위한 법과 제도의 변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미비한 법이라도 일단 지키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일"이라며 "그 다음으로 임금 체계와 직무 분석을 포함한 작업장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길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앞으로 다양화할 수 밖에 없는 고용 형태를 규율할 수 있는 노동관계법도 필요하므로 정부가 큰 그림을 갖고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노·사·정간의 신뢰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남성일 서강대 교수는 직무급제 도입의 중요성을,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심한 격차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분절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각각 강조했다. 이런 과제들은 어떤 경우든 대기업 정규직이 과도하게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양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 대기업과 공기업도 하청업체와 입찰기업에게 납품 단가를 공정하게 책정해 줘야 영세기업의 정규직 전환이 원활해진다. 결국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항 노동전문기자
hnglim@kmib.co.kr
◇설문조사 또는 전화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 명단(가나다순)

김동원 고려대(경영학) 교수, 김소영 충남대(법학) 교수,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경영학) 연구위원,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경제학) 연구관리본부장, 김태기 단국대(경제학) 교수, 남성일 서강대(경제학) 교수, 류길상 한국기술교육대(경제학) 교수, 박덕제 한국방송대(경제학) 교수,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경제학) 교수, 이병훈 중앙대(사회학) 교수,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경영학) 연구위원, 이승욱 이화여대(법학) 교수, 이원덕 삼성경제연구소(경제학) 고문, 이인재 인천대(경제학) 교수, 이주희 이화여대(사회학) 교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사회학) 연구위원, 정인수 한국고용정보원 원장,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경제학) 연구위원, 조준모 성균관대(경제학) 교수, 주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경제학) 수석연구위원,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경제학) 연구위원

임항 기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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