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의 재판청구권 남용으로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제때 재판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에게 대법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4 년 상반기) 재판청구를 남발하는 한 사람(이하 소송왕)이 대법원에 제기한 재판은 무려 3만742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 년 평균 6804건을 제기한 수치로 하루 평균 20건(18.6건)에 육박하는 소송을 제기한 셈이다 .
서울에 거주하는 50 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소송왕 정○○씨 때문에 대법원뿐만 아니라 지방법원과 고등법원도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소송왕은 같은 기간 서울중앙지법에 1만4328건의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에도 1만5937건의 소송을 넣었다.
이 소송왕이 이렇게 천문학적인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보험사가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며 보험금 지급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징계하라는 청구를 법원에 제기하면, 사기업을 상대로 징계를 청구하는 소송을 허용되지 않으므로 당연히 각하된다.
그러면 각하결정을 한 법관과 관련 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서 정작 소송가액에 해당하는 인지세를 납부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법원이 인지세를 납부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끝까지 불응하며 버티다 소장 각하명령을 받게 된다.
이 소송왕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소장 각하명령에 대해 다투면서 항고와 재항고를 하고, 재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에 다시 불복해 재항고 명령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고, 이 재심이 이유 없이 기각되면 다시 그 기각결정에 대해 항고, 재항고를 하는 식이다. 끝이 없는 도돌이표 소송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재판청구 남용으로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는 데 있다. 특정한 사람의 재판독점이 심리기간을 무한정 늘려 적시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제때 판결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사재판에 대한 대법원 재판처리기간은 2019년 6.1개월에서 2023년 7.9개월도 5년간 1.8개월이 늘었지만, 정작 이 소송왕의 재판을 제외하면 2019년 5개월에서 2023년 4.4개월로 오히려 0.6개월이 줄어든다.
이런 사정은 미제사건(5 개월 이상)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미제사건 중 2년 이내 미제사건은 2019년 1890건이었는데, 소송왕 정○○의 재판을 제외하면 미제사건은 594건으로 줄어든다. 미제사건의 68.6%가 소송왕의 사건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2023년에는 2년 이내 미제사건이 1만4382건이었으나 소송왕의 사건을 제외하면 미제사건은 379건으로 확 줄어든다. 무려 미제사건의 97.4%가 소송왕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묻지마 남소에 대해 대법원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일정 금액 이하의 소장의 경우 접수를 보류하는 방법으로 소권남용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여전히 특정인의 남소로 신속한 재판을 받아야 할 다수의 국민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석준 의원은 “최근에는 전자소송의 편의성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수백 건, 수천 건의 소장을 접수하거나 의미 없는 대용량의 증거자료를 반복적으로 제출해 전자소송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현행 제도상 미비한 부분을 정비해 소권남용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