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talk] 가요계는 표절과 카피의 왕국. 잘못된 레퍼런스 관행

[Ki-Z talk] 가요계는 표절과 카피의 왕국. 잘못된 레퍼런스 관행

기사승인 2011-09-11 08:59:01
"[강일권의 댓츠 베리 핫]

[쿠키 문화] 진짜 지긋지긋하다. 언제쯤이면 국내 표절 논란 글을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잘 모르면서 조금만 비슷한 것 같아도 표절이라고 섣불리 말하는 대중이 문제’라고 한 점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어둡다. 케이팝(K-pop) 열풍이다 한류 열풍이다 난리법석이지만, 내실은 보잘것없고 미래는 어둡다. 조금만 더 냉정한 마음가짐과 흐림 없는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자. 우리나라 가요계는 표절과 카피의 왕국이다.

우선 메이저와 인디를 통틀어서 좋은 음악을 묵묵히 만들어내고 있는 뮤지션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고 글을 이어가 본다. 최근에도 두 건의 표절 논란이 있었다. 한 곡은 당장 ‘표절’이라고 판결난다 해도 전혀 무리가 없으며, 다른 한 곡 역시 법적인 표절은 피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양심상 표절 의혹을 제기하기엔 충분하다. 국내에서 표절 논란은 이제 한 가수의 새 결과물이 나올 때 마다 꼭 치러야 하는 정기 행사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국내의 현실상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요계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의 선봉에서 활약한다는 사람들, ‘스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심심치 않게 표절 논란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창피한 행위를 한 이들이 여전히 ‘잘 나가는’ 작곡가 대우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우리나라 가요계의 최대 치부다. 그 법적 판결 여부를 떠나서 국내 음악계의 최고의 자리를 다툰다고 보도되는 사람들이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 이런 논란의 중심에 선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문제 아닌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잘못된 레퍼런스 관행의 대물림이다. 제이팝(J-pop)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됐던 일본의 대중음악이 미국 팝 음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전성기를 누리던 90년대, 우리 가요계는 제이팝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당시 표절로 판정됐던 대부분 곡이 일본 뮤지션들의 곡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발전하고 전 세계 대중음악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국내 대중음악 씬은 제이-팝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세계 대중음악 흐름의 중심인 미국의 트렌디한 음악들을 직접 흡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제이팝은 우리보다 더 세련되고 발전했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전세가 역전됐다. 이는 오늘날 환경을 잘 이용하면서 꾸준히 내공을 쌓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국내 창작자들의 노고가 있은 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열심히 (제이팝이 아닌) 미국 대중음악을 베껴댄 카피맨들의 노고(?)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국내의 작곡 환경은 미국 팝 음악계의 흐름과 맞물려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인가요라 일컫는 트로트를 제외하면, 가요의 모든 장르적 뿌리는 미국의 대중음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의 (특히,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많은 작곡가들은 팝계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물론,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젊은 프로듀서들 중에는 이미 자라면서 해당 장르 음악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국내의 많은 작곡가들이 팝 음악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영향이란 것이 앞서 언급한 특정 곡을 교묘하게 베끼는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거다. 자신이 즐겨 듣고 영향 받은 장르, 혹은 뮤지션의 음악 스타일을 구현해보고 싶어서 그 분위기는 참고하되 그동안 쌓은 내공과 감성을 바탕으로 곡의 세부적인 부분(보컬 어레인지와 멜로디 등)을 독자적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과 오늘날 표절 논란의 근원이 되는 유행하는 한 곡을 놓고, 악기 소스나 멜로디만 살짝 바꾸는 짓은 천지차이다. 둘 다 레퍼런스에 근거한 작업 방식이지만, 후자는 사기나 다름없는 근절시켜야 할 방식이다.


지금은 국외 음악을 구해서 듣기는커녕 접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과거의 우리나라가 아니다. 창작자나 전문가보다 더 많은 음악을 찾아 듣는 청자들도 많은 세상이다. 오로지 TV와 라디오의 몇 안 되는 팝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국외의 음악을 접하던 옛날이라면 몰라도 이젠 ‘난 (원곡을 부른) 그 가수 몰랐다’, ‘우연히 멜로디가 일치한 것 같다. 억울하다’, ‘이건 오마주였다’ 같은 몰지각한 변명이나 대중을 기만하는 잡아떼기는 통하지 않는다. 부디 몇 번씩이나 표절 의혹을 받았던 이들은 당장 법적으로 문제시되지 않았다고 고개를 떳떳하게 들 게 아니라 쪽 팔린 줄 알길 바란다. 더불어 제작사는 아무리 인기와 돈에 눈이 멀었다 해도 그런 작곡가, 가수들에게 계속 곡 작업을 의뢰하거나 지원해주며 그들의 주머니를 부풀려주고 우리 가요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만행을 그만해야 한다. 지금도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소수의 제대로 된 창작자들의 힘을 빼놓아서도 안 된다.

정식 기사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지금까지 표절, 혹은 카피 의혹을 받았던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진심으로 100% 깨끗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강일권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www.rhythmer.net)

*외부 필자의 기고는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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