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人터뷰] 정려원 “드라마가 내 성격까지 바꿀 줄 몰랐죠”

[Ki-Z 人터뷰] 정려원 “드라마가 내 성격까지 바꿀 줄 몰랐죠”

기사승인 2012-03-24 13:41:01

[인터뷰]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짧은 시간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 언쟁을 극도로 싫어해 늘 수없이 마음속에 문을 열고 닫는 사람. 화가 나면 남에게 따지기보다 혼자 삭히면서 잠이 드는 사람.

배우 정려원이 최근 연기한 SBS ‘샐러리맨 초한지’의 백여치는 실제 그의 모습과 180도 다르다. 백여치는 극중 천하그룹 진시황(이덕화) 회장의 외손녀로, 어릴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은 후 외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 세상 물정에 어둡고 사치스러운 안하무인 캐릭터였다.

늘 소리를 지르고 욕도 서슴지 않으며 눈치까지 없는 백여치는 정려원의 몸과 말을 빌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엽기적인 캐릭터였고 전무후무한 드라마 여주인공이었다.

지난 22일 서울 청담동 한 갤러리에서 만난 정려원은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 벌써 그리운 듯 이따금씩 울컥하다가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에는 목젖이 보일 만큼 까르르 웃기며 얼굴에 반달눈을 그렸다.

◇ “이 세상 또 다른 ‘여치’들아, 안녕”

“강남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길거리에 저와 비슷한 빨간 머리를 한 여성들이 지나가는 거예요. 비비드 색상의 스타킹을 신은 것까지 저와 비슷했죠. 옆에 매니저에게 그랬어요. ‘완전 백여치네!’”

‘초한지’는 20%를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탄탄한 마니아 층을 형성할 만큼 반응도 뜨거웠다.
정려원에게는 이번 드라마가 여느 때보다 자신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줬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자신의 본명이 아닌 아닌 극중 이름 백여치로 불러줄 때 행복했단다.

“제가 배우로 성장을 하게끔 해준,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준 작품이에요. 촬영 현장에서 우리끼리 전쟁이라고 하거든요. 재미있는 전쟁에 어떤 무기를 가져왔나 봤더니 너무 풍부하더라고요. 옆에서 5개씩 무기를 준비하는데 잘해야한다는 생각밖에 안났어요. 바짝 긴장이 됐고 그래서 더 재밌었고. 배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었어요. 시청률까지 잘 나오니까 보너스도 받았고요.”

새로운 여주인공 캐릭터를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보람이었다. 그는 “여치가 공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모 아니면 도였다. 걱정이 됐다”라며 “새로운 캐릭터 장을 여는 것에 집중하자고 했다. 끝난 것 자체가 커다란 배움이었다”고 전했다.

정려원이 꼽는 명장면은 노숙 장면이다. 메이크업이나 의상은 예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몸이 편하면 연기도 잘 나온다는 그는 오히려 킬힐을 신고 연기를 할 때 마치 화보찍는 느낌이 들어 어색하게 느낄 정도다.

“백여치는 정말 독특한 친구였어요. 오늘 아침도 재방송을 봤는데, ‘내가 언제 저랬지’ 싶더라고요. 얼굴에 때가 묻어도 너무 편하더라고요. 앞서 영화 ‘김씨표류기’ 때도 그랬었는데, 저는 이렇게 풀어지는 캐릭터가 잘 맞나봐요.”

이번 드라마는 정려원의 성격까지 바꿔놓았다. 그는 “평소 지인들과 전화보다는 문자로만 대화를 나누는 편인데,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성격이 급해졌는지 바로바로 전화해서 ‘뭐라고? 문자말고 말로 해봐’라고 하게 되더라”라며 “사람들이 다들 놀랬다. 원래는 거절도 잘 못했는데 이제는 분명히 내 의사를 전달하고 있어 스스로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 ‘내 이름은 김삼순’ 출연 당시 행복하지 않았던 까닭은

정려원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하 ‘김삼순’)이다. 당시 시청률 50%을 넘으며 국민드라마로 각광받았고 현빈과 김선아, 다니엘 헤니, 려원 등의 출연 배우들이 모두 큰 인기를 얻은 화제작이었다.

정려원은 건들면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리고 연약한 희진을 그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표현했고, 뚝뚝 떨어지는 그의 눈물에 시청자들은 가슴 아파했다. 가수 출신 배우로서 첫 인정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사랑과 배우라는 가능성을 맛 본 의미 있는 작품임에도 정려원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의외의 말을 건넸다.

“모두들 ‘넌 2005년도에 되게 행복했겠다’라고 해요. ‘김삼순’으로 인생 역전했다고 생각을 하시죠. 그런데 전 갑자기 좋아해주시는 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왜 이제와서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들고, 인기를 누리면 되는데 마음은 무겁기만 했어요. 느닷없이 찾아온 인기는 언젠가 없어질 신기루 같은 거라 느꼈나봐요. 워낙 주눅들고 억압받으며 살다보니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고 있었죠.”

성장통이었을까. 아니면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어쨌든 정려원은 ‘김삼순’으로 배우로서의 한걸음 대중 앞에 나온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후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을 꿰차며 주연 배우로 활약했지만 이렇다할 흥행이나 인기를 올리지는 못했다. 드라마 ‘자명고’와 ‘가을소나기’가 그랬고, 영화 ‘적과의 동침’ ‘통증’ 등이 그랬다.

“흥행 여부를 떠나서 끊임없이 나를 찾아주고 섭외가 들어온다는 것은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저는 ‘관객들은 나를 계속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섭외가 들어오지?’하며 신기해할 정도예요. 관객이 아니더라도 만드시는 감독들이 내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나 궁금해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해요. 감독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아닌 관객이나 시청자가 좋아하는 배우로 앞으로 더 인정받아야죠.”

◇ “‘샤크라’ 막내 은이, 가장 일찍 결혼할 줄 알았죠”

데뷔 13년 차. 연기 생활은 8년 차다. 한 때는 여성 4인조 그룹 ‘샤크라’도 화려한 데뷔를 하며 무대 위의 인기도 누려봤다. 연기자가 아닌 가수로 데뷔했던 계기를 물었다.

“호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2주 간 여행을 왔는데, 벌써 13년 째 한국에 있어요.(웃음) 운명이었겠죠. 문든 한국 연예계가 궁금해서 오디션을 봤는데 붙은 거예요. 당시에는 가수가 연기를 하는 일이 흔치는 않았는데, 우연히 아침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연기자가 제 길이라고 깨닫게 됐죠.”

하지만 ‘텃새’로 인해 쉽지만은 않았다.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는 생각보다 많은 짐을 얻게 했다. 신인 연기자로 활동하던 때의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가슴이 아플 만큼 고되고 힘들었다.

‘샤크라’ 멤버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 황보와는 트위터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물으며 ‘화이팅’을 외친다. 특히 셋째 아이를 출산한 막내 이은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남다르다.

“은이는 막내인데 벌써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에요. 저는 은이가 우리 중에 가장 일찍 결혼할 줄 알았어요.(웃음) 어릴 때부터 일찍 결혼하고 싶어했거든요. 그런 친구들은 정말로 일찍 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결혼 계획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는 “결혼은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누구를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부터 든다”라며 “쉽지는 않다”라고 답했다.

꼭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는 변호사다. ‘초한지’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다. 그는 “조곤조곤 따박따박 언쟁에서 하나도 굽히지 않고 받아치고 심지어 이기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라며 “‘초한지’에서 나에게 없는 성격을 연기하면서 큰 매력을 느꼈던 만큼 대리만족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밝고 명랑한 캐릭터였던 만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섭외도 줄을 잇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 고사하고 있다. 남들과의 언쟁을 피하고 늘 상처받을까 피해 다녔던 정려원은 잠시나마 백여치의 엽기적인 행동과 과감한 발언으로 일탈을 즐길 수 있었다. 아직까지 붉은색 머리를 유지하며 백여치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는 이유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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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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