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단어도 생소했던 시절…패티김이 떠올린 46년 전의 그 무대

‘뮤지컬’ 단어도 생소했던 시절…패티김이 떠올린 46년 전의 그 무대

기사승인 2012-04-09 18:04:01

46년 만에 다시 만난 뮤지컬 ‘살짜기옵서예’…최종 오디션 심사위원 맡아

[쿠키 연예] 패티김(74)은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국내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은 가수다. 국내 최초로 뮤지컬에 출연한 배우라는 점도 그 중에 하나다. 최근 뮤지컬 ‘살짜기옵서예’의 특별 심사위원으로 나선 것도 초연배우라는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패티김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살짜기옵서예’를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재현을 한다고 해서 굉장히 기뻤다”라며 “(초연 배우로서) 앞으로 도움이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협조해드릴 의향이 있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내년 2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재개관작으로 리메이크될 ‘살짜기옵서예’는 4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된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다. 지난 1966년 10월 서울시민회관에서 초연된 ‘살짜기옵서예’는 5일 간 열린 7회 공연 동안 총 1만 6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고, 이후 한국뮤지컬협회는 초연일인 10월 26일을 기념해 ‘뮤지컬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고전 소설 ‘배비장전’을 김영수 극본, 최창권 작곡으로 옮긴 이 작품은 죽은 아내와 정절약속을 한 배비장과 기생 애랑 간의 사랑을 그린 내용으로, 패티김이 제주 기생 애랑 역을 맡았었고 곽규석이 익살꾼 정비장 역을, 배우 김성원이 제주 목사 역을 연기했다.

9일부터 3일 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최종 오디션서 패티김은 자신이 연기했던 애랑 역을 비롯 주요 배역을 가리는 오디션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40여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다시 ‘살짜기옵서예’와 만난 패티김은 여느 때보다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한국에서의 뮤지컬 데뷔에 앞서 1963년 미국에서 잠시 뮤지컬 활동을 했던 패티김은 “뮤지컬이라는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가 미국 가서 처음으로 뮤지컬에 대한 흥미와 관심, 매력을 느끼게 됐다”며 “뮤지컬에 대한 향수가 오래 남아 있다. 항상 새 관객하고 만나 공연한다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인 것 같다”며 뮤지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힘든 점도 많았다. 그는 “당시에는 인종차별도 심했고, 성공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여 미국 갈 때의 꿈과 희망과 큰 차이가 나는 걸 느꼈다”라며 “당시만 해도 동양 여자가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 몇 개뿐이었다. 동양인은 하인이나 셋째 부인 정도 밖에 기회가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에 대한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패티김은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뮤지컬에 심취돼 있었다. 오디션도 많이 보러 다니고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내가 설 무대가 없었다”라며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우연히 ‘살짜기옵서예’를 하게 돼 너무 기뻤다”라며 ‘살짜기옵서예’와의 각별한 인연을 설명했다.

패티김이 초연하던 당시에는 대사나 의상 노출 등에 대한 제제가 심했다. 5개월 간 연탄불로 보리차를 끓여먹고 연습하던 힘든 시절이었지만 폭발적인 인기와 관심에 배우들은 예상보다 큰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공연은 5일 만에 막을 내려야 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국빈을 위한 연설 장소로 사용돼야 했기 때문이다. 패티김은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가 살던 그런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 두고두고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최근 가수들이 뮤지컬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며 다양한 재능을 뽐내는 것과 관련, 선배로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패티김은 “무대에서 노래만 하는 것보다 요즘에는 재능 있는 가수들이 많다”라며 “춤을 못 추면 가수되기 힘들다는 점을 환영하는 건 아니지만, 온 세계 음악 세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가수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노래를 잘해야 한다. 예쁘고 잘생기고 체격이 좋은 것은 플러스 요인이다. 가수는 노래를 일단 잘해야 오래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며 후배들의 재능을 다시 한 번 실감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는데 너무 노래들을 잘하더라. 놀란 것은, 요즘 다 그룹인데 노래는 몇 소절씩 돌아가면서 조금씩 하니까 노래를 잘하는지 몰랐다. 또 과거에는 립싱크를 많이 하니까 실력을 몰랐는데, ‘불후의 명곡’을 보니 가창력 좋은 멤버들이 많구나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힙합, 랩 음악이 나오고 가수들이 노래보다는 퍼포먼스에 열중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다”는 그는 “요즘 다시 (가창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돌아오는 것 같다. 후배 젊은 친구들이 노래를 잘 해야겠구나 깨달은 것 같다. 나로서는 너무 대환영”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패티김은 1958년 8월 미 8군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하며 데뷔,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국내 대표적인 디바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600여곡을 발표했으며 ‘사랑은 영원히’ ‘서울의 찬가’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등이 대표적이다.

또 1978년 대중가수로는 처음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1985년 서울시향과 팝 콘서트를 열었다. 이어 1989년 한국가수로는 처음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2004년 데뷔 45주년 기념 전국투어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지난 2월, 은퇴를 공식 선언한 패티김은 오는 6월 서울을 시작으로 1여 년간 글로벌 투어를 마친 후 가수로의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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