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리뷰] 노출? 노인분장? 영화 ‘은교’가 진정 보여 주는 것

[쿠키 리뷰] 노출? 노인분장? 영화 ‘은교’가 진정 보여 주는 것

기사승인 2012-05-02 07:59:01

[쿠키 영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는 개봉 전부터 신예 김고은의 파격 노출, 박해일의 노인 분장, 19금 예고영상 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은교’를 보고 난 후 가장 깊게 와 닿는 것은 파격 노출도, 노인이 돼 버린 박해일의 모습도 아니다. ‘늙어가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이다.

열일곱 소녀 은교의 싱그러운 젊음과 관능에 매혹 당한 위대한 시인 이적요. 은교를 만나면서 젊은 시절의 생기와 감춰 왔던 욕망이 서서히 고개를 들지만 어찌할 수 없는 늙은 모습에 깊히 절망한다.

그에게는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제자 서지우가 있다. 채워지지 않는 재능에 대한 갈망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적요의 천재성에 열등감을 지녀 온 서지우는 이적요가 은교에 흔들리는 모습을 발견하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며 화를 자초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존재하는 은교.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 속에 오묘한 관능미를 간직한 그는 두 사람이 애써 감춰 온 욕망과 질투, 열등감에 불을 지피며 각자가 갖지 못한 것을 탐하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뾰족한 연필은 슬프다’ ‘필통의 달각달각 소리가 아팠다’등 정지우 감독은 시적인 대사들로 영화에 감성을 불어넣는다. 극중 은교가 말하는 ‘여고생이 남자와 자는 이유’에 대한 답도 꽤나 철학적이다.

세 주연배우가 갖는 감정선이 복잡 미묘한 데다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와 인간의 욕망, 그를 향한 좌절을 담아 내다 보니 영화가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겉모습은 늙어가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이적요가 우리에게 전하는 성찰과 깨달음은 작지 않다. 상쇄될 만하다.

다만 노인을 연기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는 박해일이 매번 8시간의 분장으로 노인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영화 초반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말투와 목소리로 극에의 몰입을 막는 것은 아쉽다. 다행히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기본기 탄탄한 박해일표 이적요에 녹아들며 심리적 부적응은 사라진다.

뮤지컬 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린 김무열은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맘껏 펼쳤다. 이적요를 존경하고 아들처럼 따르는 모습부터 열등감과 분노에 휩싸여 폭발하는 모습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표현하며 소설 속 서지우를 스크린으로 옮겨 오는 데 성공했다. 파격적 노출을 선보인 김고은은 성적 매력을 능가하는 싱그러움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자신의 가치를 각인시킨다. 4월 26일 개봉한 영화로 청소년관람불가.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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