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人터뷰] 유지태 “모델·배우·감독 꼬리표, 치열하게 싸웠다”

[쿠키 人터뷰] 유지태 “모델·배우·감독 꼬리표, 치열하게 싸웠다”

기사승인 2013-06-03 18:06:01


[인터뷰] 유지태. 큰 키에 선한 미소, 한없이 순하고 다정다감해 보이다가도 문득 얼굴 이면에는 서늘한 차가움이 비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외모 덕분일까. ‘봄날이 간다’ ‘동감’에서의 따스한 모습과 ‘올드보이’에서의 악랄한 모습까지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오가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관객을 만난다. 수차례 단편영화를 제작하며 감독으로 영역을 확장한 유지태는 첫 장편영화 ‘마이 라띠마’를 내놓았다.

그는 지난 2003년 단편영화 ‘자전거 소년’을 통해 영화감독으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연출과 각본·주연까지 맡은 단편 영화 ‘초대’(2009)는 제5회 인디판다국제단편영화제(InDPand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폐막작으로 선정됐으며,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자전거 도둑’으로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후지필름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마이 라띠마’ 역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 제15회 도빌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오롯이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영화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30대의 한 남자와 20대 초반의 이주여성이 겪는 삶의 성장통과 사랑, 고독함을 담는다. 유지태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느낀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30일 서울 이수동 한 카페에서 유지태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긋하게 조용조용한 말투였지만 그의 이야기에서는 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가득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소외 계층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했다. 상업영화 접근 방식을 피하고, 대상이 가진 그늘을 정확히 비추는데 초점을 맞췄다. 또 이런 독립영화들이 상업영화들 사이에서 방부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이주여성에게 행해지는 성추행이나 언어폭력이 상당해요. 같은 한국 남자로서 부끄러울 정도죠. 인식 변화가 많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런 폭력이 행해지고 있어요. 상업영화를 만들려면 ‘방가방가’나 ‘완득이’처럼 코믹한 요소를 넣어야 하는데 제 작품을 통해서는 그들의 딜레마를 정확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 성향과 작위적 설정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거죠.”

영화는 이주여성을 주인공으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풀어간다. 호흡이 길고 러닝타임이 2시간이 훌쩍 넘기에 관객들이 지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 하지만 유지태는 외부로부터의 압박을 이겨내고 담고자 하는 내용을 소신 있게 표현해냈다.

“아무래도 영화는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작은 영화라고 해도 제작사와 투자사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압박이 있을 수 있어요.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시나리오를 조금 밝게 고치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제 소신을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했어요. 영화가 다 나오고 나서 남자 주인공 이야기의 일부를 자르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못 이기고 자르면 그 장면을 찍으며 배우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제 주장만 한 것은 아니고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저 또한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배우와 겸하는 감독이어서일까. 무엇보다도 배우와의 약속을 중시했고, 그들의 입장을 존중할 줄 아는 감독이었다. 신인 박지수에게도 최선의 연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려 애썼다.

“박지수 양은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호흡이 길었어요. 상업영화 울타리였다면 앞부분이 잘리거나 다른 컷으로 대체됐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편집하지 않고 영화에 모두 담았어요. 편집으로 줄여야 할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으니까요. 또 선배 배우로서 그녀의 연기를 온전히 보여주고 좋은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죠.”



데뷔 초 모델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많은 차별 속에서 연기했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에게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겪는 설움을 털어놨다.

“당시만 해도 모델 출신 배우라는 말이 ‘비주얼은 되지만 연기는 안되는’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어요. 그런 편견과 선입견은 배우로서 다른 배우와 감독을 만났을 때 아무래도 영향을 끼쳐요. 현장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죠. 같은 말을 해도 제가 하면 깊이 없이 느끼고 그런 것들이요. 영화는 연극연기가 전부가 아니잖아요. 모델 출신 배우들의 이미지가 더 깊이 부각될 수도 있기에 동등하게 바라봐야 해요. 배우출신 감독이라는 꼬리표도 마찬가지예요. 일부에서는 홍보 효과 때문에 투자가 더 잘 들어오지 않느냐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런 생각조차 편견인 거죠. 또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바라보기에 평가 절하될 때가 있고요.”

이제는 편견과 선입견들 속에서 속상해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고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허례허식 없이 살아가는 게 삶의 목표라고 했다.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지만 꿈을 위해서는 치열함을 잃지 않겠다고.

“어릴적 제가 모델하겠다고 했을 때 비웃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배우할거야’ ‘감독할거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지금은 다 해냈어요. 꿈을 향해서 꾸준히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서 좋은 모습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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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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