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박정희 투데이] 몽탄소, 몽몽탄, 몽에몽, 몽예뉜, 몽틴원

[박근혜&박정희 투데이] 몽탄소, 몽몽탄, 몽에몽, 몽예뉜, 몽틴원

기사승인 2013-09-24 16:01:01

[친절한 쿡기자 - 박근혜&박정희 투데이] 1973 vs 2013 9월24일

1. 박정희 대통령은 23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3회 박대통령컵쟁탈 아시아축구대회 개막식에서 시축을 했다. 양복을 입고, 가슴에 꽃을 꽂은 채 구두를 신고 하는 시축이었다. 약칭 박스컵이었다. 사진은 경향신문 1면이다.

2. 이날 개막 A조 예선 경기에서 한국은 크메르(지금의 캄보디아)를 6대0으로 대파했다. 쾌조의 스타트였다. 장신의 김재한, 단신의 김진국이 맹활약을 했고 차범근과 박이천 등이 상대 골문 근처를 휘젓고 다녔다. 첫 골은 김재한의 헤딩패스를 잡아 김진국이 슛을 날려 성공시켰다. 뒤이어 차범근도 김재한의 헤딩 패스를 받아 골문을 갈랐다.

강력한 우승 후보 ‘버머’(미얀마)도 이날 태국과 경기를 펼쳤다. 그런데 예상 외로 고전했다. 2:2로 비긴 것. 버머는 박스컵 1회에서 한국과 공동 우승을, 2회에서 단독 우승한 아시아 축구 강국이었다.

3. 70년대 축구는 동남아 동네축구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아시아 맹주였고 당시 국민은 축구를 통해 애국심을 키웠다. 킹스컵과 메르데카컵축구대회는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방콕과 자카르타발 라디오 생중계를 했는데 이광재 아나운서가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라고 말하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리 선수가 슈팅한 것이 골문을 한 참 벗어났어도 “아슬아슬한 볼이었습니다”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그 반대인 경우 “어림없는 볼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상상력으로 축구를 ‘보던’ 시절이다.

4. 한국을 떨게 한 최강자는 버머였다. 지금의 일본쯤 된다고 봐야겠다. 그 당시 일본은 하수였다.

필자는 지금도 그 아시아의 ‘축구 선진국 버머’의 선수 이름이 생각난다. 몽탄소, 몽몽탄, 몽에몽…몽키 후손도 아니면서 왜 그리 몽씨가 많은가 했더니 유부남들은 모두 몽자를 붙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한국 대표팀은 버머만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졌다. 애국심에 불탄 국민은 제2회 박스컵 준결승에서 전반 23분 몽예뉜이 날린 25m 중거리 슛 한방에 무너졌다. 차범근이 안방서 차듯 상대 골문을 유린했는데도 말이다.

흑백TV로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은 눈물을 흘렸고 마치 어머니를 잃은 듯 슬퍼했다.

5. 박정희 대통령이 시축한 3회 대회에서도 한국은 버머에 2회 대회처럼 당했다. 몽애몽의 센터링을 이어 받은 몽틴윈이 헤딩슛으로 녹아웃 시켜 버린 것. 박 대통령 청와대서 생중계 봤을 것이다.

6.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반기여서 문화와 스포츠에 여력이 미치지 않는 듯 하다. 복지공약 후퇴 논란이 확산되면서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7. 70년대 스포츠는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애국주의 고취가 우선시 됐다. 스포츠 정신은 다음의 문제였다. 예술도 ‘검열’로 통제를 했다.

8. 오늘날 문화와 스포츠는 40년 전에 비해 위상이 높아졌다. 한류와 월드컵 개최 등으로 상징할 수 있다. 그런데 각박한 정치가 두 장르를 편히 즐기지 못하게 한다.

9. 박근혜 대통령이 정극 한 편이라도 보면서 머리를 식혔으면 한다. 리더의 릴렉스(relax)는 국민도 릴렉스하게 만든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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