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아시아 중시정책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일본과 관계 개선을 요청한데 대해 박 대통령은 일본이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행사해 달라고 주문했으며, 이달 열린 한일 국방차관 회담도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신문은 이어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안중근 의사의 기념 표지석 설치를 제안하자 시 주석이 즉석에서 받아들인 데 비해, 취임 직후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는 관례를 깨고 지금껏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는 한일 관계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사상 최악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런 상황이 중국의 부상과 북한 핵위협에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날로 꼬이게 하고 있다고 타임스는 평가했다.
실제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잠재적 분쟁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 중인 한일 간의 군사협력 확대 방안은 지금껏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의 대니얼 러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역사 문제에서 비롯된 긴장관계가 한일 간의 협력 부문에서 정치적 비용을 야기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타임스는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의 마찰로 이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의 관계 악화는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려고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는데 비해 한국은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적인 요인 외에 양국 정상의 가족사도 최근의 냉기류에 영향을 끼치고 것 같다고 타임스는 밝혔다.
아베 총리가 2차 대전 이후 미군정 체제에서 A급 전범으로 복역하다 나중에 총리를 지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의 명예회복 등을 위해 극우 성향을 보인다면, 박 대통령은 일본군 장교를 지낸 부친과의 차별성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NYT는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에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다면서 사실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워낙 민감한 이슈라는 점에서 누가 한국의 지도자라 해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총리와는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 측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더욱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배상하지 않는 한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인데 비해 극우세력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아베 총리로서는 이런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인 만큼 양국 간의 해빙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