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이 고문직까지 그만두겠다고 한 것은 하나금융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뜻이다. 김 전 회장은 고액의 고문료 논란과 과도한 미술품 구매 의혹이 불거져 금융당국이 조사하고 있는 것에 압박감을 느껴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3일 “김 전 회장이 고문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전해왔지만, 금융감독원의 검사 도중에 그만두면 실제로 잘못이 있어서 그러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으니 고문 계약(2년)이 만료되는 내년 3월까지 유지한 뒤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기를 다 채우자는 회사의 제안을 김 전 회장이 받아들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금감원이 하나은행 종합검사에서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에 곤혹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 중 검사를 마치는 금감원은 김 전 회장이 고문료로 받은 액수(4억~5억원)의 적절성 여부와 미술품 구매 관련 의혹 등을 살펴보고 있다.
하나은행은 4000여점의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은행 임직원 출신이 관여하는 회사를 통해 거래가 이뤄져 비자금 조성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나금융 측은 “김 전 회장이 미술품을 한꺼번에 사들인 게 아니라 예전에 은행들 통합과정에서 각 은행이 갖고 있던 그림들을 다 합친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2005년 하나금융 출범 때 회장에 올라 3연임한 김 전 회장은 특히 대학 동기인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MB 정부 말기인 지난해 용퇴했지만 하나금융에서 ‘왕(王)회장’으로 통하는 등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이번 금감원 검사가 ‘금융권의 MB색 지우기’ 차원에서 김 전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금감원은 이전 정권 인사들을 정리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며 극구 부인하지만, 현재 김 전 회장과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등 4대 금융지주 전 회장 관련 의혹들이 모두 검사 대상이다.
검사 결과에 따라 대대적인 사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4대 금융지주 전 회장들은 이전 정권에서 금융당국도 함부로 못 건드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며 “이제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검사를 통해 부실·비리를 척결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