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2014년 명·청 교체기 한반도 정세, 줄 안서고 살아남는 법

[전정희의 스몰토크]2014년 명·청 교체기 한반도 정세, 줄 안서고 살아남는 법

기사승인 2014-01-01 14:43: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2014년 1월 1일입니다. 여느 해와 같은 아침이라고 생각하시겠으나 동북아의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늪을 지나 것 같은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늪 위에 널빤지 하나씩 던져 놓고 빠져 나가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1609년 광해군 집권 이듬해 1월 1일의 국제정세와 같습니다.

2.

동북아 균형이 무너진 것은 중국이 G2 대열에 들어서면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나섰는데 이 선포가 우리에겐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가 이어도를 포함하는 중국의 구역 선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무시 전략으로 나옵니다.

우리보다 더 놀란 미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환태평야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우방을 챙기겠다고 합니다. 곤혹스러운 건 한국입니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미국편에 가담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여기에 중국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공동대응하자고 요구합니다. 결기 세우면야 뒤도 안 가리고 그러해야 하지만 집단적 자위권 운운하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엄밀히 미·중만큼이나 강력한 상대죠.

미국과 일본을 속된 말로 ‘개무시’하는 국가는 북한과 남한, 즉 조선민족 밖에 없을 겁니다. 그만큼 현실 인식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되나요?

3.

아무튼 박근혜 정부 들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지지 기반이 보수층이고, 그들은 북한과 일본에 대해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친중, 반일 정서가 박근혜 정부 1년 차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시기 한국은 세력균형자(power balancer)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이른바 ‘동북아균형자론’으로 대응했습니다.

4.

1609년 임금 광해는 일본과 기유약조를 체결하고 국교를 재개합니다. 삼포개항을 통해 무역도 재개합니다. 아버지 선조 때 왜란으로 인구 절반이 감소했고, 경작지는 3분의 1 줄어들었습니다.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했고, 국가 재정도 바닥을 드러낸 상태에서 광해군이 등극한 거죠.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무조건 전쟁을 피하자’ 였습니다. 따라서 국제역학관계에 주목했죠. 만주에서 여진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대중화(大中華) 명나라가 쇠퇴한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여진은 결국 광해군 재위시 후금이 되고 끝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가 되죠.

일본은 그 무렵 네덜란드와 영국 상선이 드나들면서 남해로 뻗어나갑니다. 필리핀, 베트남 등에 일본인 마을이 있었을 정도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명과 조선에 국교재개를 요청한 것도 해외무역을 통한 부를 축적하고, 그 자신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진은 1616년 후금을 세웁니다. 명은 이태 뒤에 후금을 치겠다고 조선에 군사를 요청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강홍립을 도원수한 1만여명의 병사를 보내나 슬그머니 빠지는 이른바 명·청 등거리외교를 하죠.

5.

광해군은 대중화 명, 신흥 강국 청, 전국 통일한 일본 막부를 상대로 줄타기 외교를 하며 균형을 잡아갑니다. 광해군 때 집권 세력인 북인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섰던 이들의 계보입니다.

그러나 사대 보수세력인 서인은 여전히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소중화 의식으로 숭명배금으로 똘똘 뭉쳐 끝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습니다. 명나라가 청에 쫓겨 남명이 되고, 멸망하는데도 소중화를 외치다 병자호란의 수모를 당합니다.

6.

사실 위급한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이 전란 등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내재적 힘이 어디에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서인 등과 같이 명분에만 휩싸인 내재적 힘은 국가간 적을 낳고 그것은 결국 화로 돌아옵니다.

7.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지리적 여건 등으로 주어진 구조적 숙명입니다. 특히 중국은 5000년 역사 이래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깔보고 산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여년 정도입니다. 이들이 방공식별구역과 동북공정 등으로 밀고 들어옵니다.

따라서 미국을 섭섭하게 만드는 지나친 한·중 우호는 우리 자신이 한쪽으로 줄서는 일입니다. 중국이라는 ‘주먹’은 가깝습니다. 청나라가 일주일여 만에 한양 점령해 버린 것 잊지 않으셨겠지요? 반면 미국은 멉니다. 그만큼 중국보단 직접적 이해가 떨어진다는 얘기죠. 일본은 우리의 내재적 힘을 합치면 감당할 만 합니다.

8.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쪽에 줄을 서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 동서냉전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도 줄서기가 곤란해진 상황이 됐습니다. 북한을 달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도발이 결코 한반도 정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강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거든요.

9.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갇힌 인조에게 항복할 것을 권한 최명길이나, 끝까지 맞서 싸우자고 한 김상헌이나 애국자들입니다.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보수세력 친명파가 ‘멘탈 붕괴 조선’을 만들어버렸던 거죠.

훗날 나란히 청나라 심양에 잡혀간 두 사람. 김상헌은 최명길이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것을 보고 비로소 최명길이 애국자임을 인정합니다.

10.

2014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내재적 힘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달렸습니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균형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한 해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도가가 국민 얘기를 귀 담아 들어야 합니다. 지지자 51%가 아닌 49%를 상대로 정치를 해야 합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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