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비공개 접촉은 통상적으로 공동 성명이나 남북 정상회담으로 연결됐다. 1971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했고, 남북은 여러 차례 비밀 접촉을 가진 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9년에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비공개로 접촉한 사례가 있다. 당시 양측의 이견 속에 합의가 막판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고, 정부는 비공개 접촉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비밀 접촉은 사실로 확인됐다.
북한이 이번 접촉을 비공개로 제의한 배경은 대화의 의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비밀 접촉은 대개 남북 정상회담 등 중대 사안을 협의하는 자리였던 만큼 북한이 이번 접촉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좀 더 내밀한 협의를 벌이고자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이번 접촉에서 북측 단장으로 나온 원동연 통전부 제1부부장이 2009년 김 부장을 보좌해 비밀 접촉에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거리다. 또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직접 나서 우리 측 카운터파트너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지목한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반면 우리 측은 북한의 비밀 접촉 제의를 거부했다. 당면한 이산가족 상봉의 성사에 집중하고 이후 과제는 그때 가서 협의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굳이 이번 접촉을 비밀리에 진행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남북 관계를 가급적 투명하게 가져가겠다는 박근혜정부의 기조도 고위급 접촉 공개 방침에 반영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후 남북 접촉이나 회담에선 대북 정책 주무부서인 통일부가 배제된 채 북한이 청와대와 직거래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일부가 남북관계 현안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북측이 정책결정권을 가진 청와대로 직통로를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12일 “이번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앞으로 북한은 크고 작은 남북관계 현안 논의를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