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꾸야여관(4)] 1942년 와탄강 너머 칠산바다

[소설 '기꾸야여관(4)] 1942년 와탄강 너머 칠산바다

기사승인 2014-02-17 09:10:01

[소설 ‘기꾸야여관’(4)]

# 1942년 와탄강 너머 칠산바다

운이는 산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밀물이 들어오기 전 집까지 당도해야 한다. 그러나 산이 가팔랐다. 그녀가 걷고 있는 대덕산은 왼쪽 와탄강과 단애를 이루고 있었다. 오솔길에서 삐끗이라도 하면 와탄강에 떨어져 물귀신이 될 판이었다. 절벽 오른쪽은 대덕산 급경사였다.

이 해송길은 모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늙은 소나무가 아니면 더 없이 황량했을 것이다.

쏴아쏴아.

솔바람 소리와 밀물 들어오는 소리가 합쳐져 바람을 탔다. 그 바람은 법성포만 칠게를 제 구멍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바람은 그렇게 구멍구멍마다 검은깨 같이 펼쳐져 있던 칠게, 농게 등을 삽시간에 도망치게 한 후 와탄강과 닿으면서 더 센 바람으로 바뀌었다.

바람이 수면을 제비 물 치듯 하더니 회오리를 일으키며 튀어 올라 대덕산 절벽을 타고 치올랐다. 법성포만에서 와탄강을 따라 올라온 갈매기들이 거센 바람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공중에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어머!”

운이는 깜짝할 새에 굴비 두름을 손에서 놓쳤다. 짚을 꼬아 엮은 굴비 두름을 낭떠러지 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확 불어온 바람 때문이었다. 운이는 와중에도 왼손으로 부풀어 오른 검정치마를 누르고 오른손을 뻗쳐 굴비 두름을 잡았다. 책보를 등에 메었기에 다행이었다.

치마를 추스른 운이는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솔잎이 수북이 쌓인 곳에 앉았다. 짬쪼름한 굴비 냄새가 났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물때에 맞출 수 있겠지. 충분할거야. 해가 아직 바다 위에 있어.’

멀리 칠산 앞바다 붉은 해가 사방을 노을로 물들였다. 법성포 읍내는 노을빛에 가려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숲쟁이 푸른 나무들이 노을빛을 튕겨 읍내를 가렸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출발했어야 했는데…’

운이는 그렇게 오솔길 솔잎 방석에 앉아 다리를 모으고 검정치마를 무릎 사이로 치마가 날리지 않도록 끼웠다. 봄바람은 때를 가리지 않고 장난을 쳤다.

잠시 바람이 멎었다.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었다.

운이는 앞가슴을 숙여 버선발 끝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자줏빛 할미꽃이 노란 꽃술을 눈 삼아 운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잎마다 솜털을 보송보송 덮고 있었다. 마른 풀 사이에서 솟아나 예쁘게 피어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나이가 드셔도 너무 고우세요. 하하.”

운이는 혼자 말을 하며 웃다가 입을 가렸다. 제 뒤편 대덕산 은선암 스님이 행여 들을까 싶어 쑥스러웠던 것이다. 은선암은 거기서도 한참을 가는데 말이다.

운이는 고운 손을 뻗어 발끝 할미꽃을 꺾으려다 손을 거뒀다.

“할머니,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너무 고운 자줏빛 옷을 입으셔서 꺾으려 했네요.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운이는 할미꽃에게 인사를 하고 책보를 추스른 뒤 일어섰다. 가슴골에 흐르던 땀이 솔바람에 말라 시원했다. 이제부터는 낭떠러지 길을 따라 와탄강 갯바닥 길로 내려가야 한다. 운이는 조심스레 한발 한발 내밀며 앞으로 나갔다. 잔돌들이 운이의 짚신에 채여 또르르 먼저 구르며 길을 안내했다. (계속)

전정희 jhjeon2@kmib.co.kr/ 국민일보 문화부장, 종교부장, 종교기획부장, 인터넷뉴스부장 등 역임. 인터넷 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을 국민일보 쿠키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민족주의자의 죽음’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공저), ‘TV에 반하다’ ‘아름다운 전원교회’ 등이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2@kmib.co.kr
전정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