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약을 싸게 사는 병원에 정부가 예산으로 차액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가 도입된 지 한 달 만에 결국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의료원 등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시장형실거래가 폐지 전인 현 시점에 ‘을’의 입장에 놓인 제약사들에게 약가를 저가에 납품하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삼성 계열의 삼성의료원이 900품목의 의약품목을 제약사들에게 공개한 뒤 가격이 낮은 약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은 900품목의 의약품 입찰을 위해 제약사들에게 17일 의약품 납품 견적서 제출을 전달했고 의약품에 대한 견적가격를 병원 측에 18일까지 제출하도록 통보했다.
삼성서울병원이 900여품목을 공개하고 제약사들 입찰 경쟁에 나서자 제약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진 병원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의약품을 원내 코드 목록에서 삭제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네릭(복제약)을 선택해 원내코드로 등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수의 대형병원들이 1년치 의약품을 단돈 1원, 5원 등 초저가로 살 수 있는 이유는 병원의 의약품 처방목록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에 따라 제약회사의 사활이 걸렸기 때문이다. 병원 처방목록에 들어가지 못하면 약국 등 원외처방 의약품 판로까지 막혀 사실상 회사문을 닫을 수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병원공급 약값(원내처방)은 포기하고, 원외처방 판매만으로 수익을 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을에 위치에 놓인 제약사들은 의약품 납품 견적서에 무조건 약을 낮게 책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 제약업계의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계열의 삼성의료원이 제약사에게 900품목을 공개하고 가격이 제일 낮은 약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당황스럽다”며 “대형병원인 삼성의료원 측이 제네릭 등을 보유한 제약사의 약을 3~5원 등으로 저가에 구매하게 될 경우 제약사들에게 돌아오는 타격은 크다”고 말했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병원들의 저가요구는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표명했다. 시장형실거래가 폐지까지는 아직 4~5개월의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의료원 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병원이 시장형실거래가 제도가 폐지되기 전인 4~5개월간 정부로부터 수백억의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제약사들에게 상당한 갑의 횡포를 일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센티브를 타내기 위한 노골적인 저가공급요구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굴지의 대기업 계열의 병원이 상대적 약자인 제약사에게 갑의 횡포를 일삼는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계열의 삼성의료원이 우리나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있어 표본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상대적으로 을에 놓인 제약사에게 약가 후려치기 등 저가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갑의 횡포이며, 병원 측은 다시 상생 차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의료원 등 시장형실거래가로 인한 실제 수혜자는 대형병원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시장형실거래가 시범사업이 이뤄진 2010년도에 요양기관에 제공된 인센티브 91.7%인 2143억원은 대형병원에 집중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출자료를 바탕으로 추계한 결과, 서울아산병원 122억7000만원, 서울대병원 122억6000만원, 삼성서울병원 78억7000만원 등 대형병원들이 인센티브를 받았다. 김성주 의원은 “약가인하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은 최대 1878억원이지만 의료기관 인센티브로 2339억원이 지출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최대 1601억원의 손실만 낳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