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게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특히 의회는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주요 야당 지도자들이 21일 합의한 정국 위기 타협안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타협안은 대통령 권한 축소를 위한 2004년 헌법 복귀 및 개헌, 10일 내 거국 내각 구성, 대선 연내 실시 정도만 정했다.
◇우크라이나 두 개로 쪼개지나=라다는 일사천리로 대통령 권한 축소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라다가 유일 합법 권력기구임을 자처하면서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을 결정했다. 대선 날짜도 5월 25일로 대폭 앞당겨 잡았다. 이어 티모셴코 전 총리 석방 결의안으로 마무리했다. 정권교체를 위한 일련의 절차를 순식간에 진행시킨 것이다. 동부 하리코프 내 여성교도소에서 석방된 티모셴코 전 총리는 곧바로 지지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부의 키예프 독립광장으로 이동,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1만여명의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티모셴코는 2004년 말 우크라이나의 민주시민혁명인 ‘오렌지 혁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야누코비치 정권에서 2011년 10월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다. 정치적 탄압이란 시각이 많았다.
같은 시각 쫓겨나듯 키예프에서 빠져나온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정반대로 하리코프로 날아가 주요 정부 관계자들과 긴급 회동했다. 이 회의엔 러시아 고위 국회의원도 참석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회의에선 야권의 권력 찬탈에 대비, 군대를 동원해 세력 규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일 합법 권력기구를 자처한 의회와 “사퇴는 없다”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정국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AP는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최고조의 정국 혼란 상황”이라며 “자칫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질 판”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전부터 친(親)러시아 동부와 친(親)서방 서부의 ‘분열된 나라’로 인식돼왔다. 동·서부는 사용하는 언어마저 각기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등으로 다를 정도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에 지지의 뜻을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긴급 성명에서 “라다의 조기 대선 실시 선언을 환영한다”고 했고,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티모셴코 전 총리의 석방을 반겼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아예 “새로 구성되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독일·프랑스·폴란드 외무장관에게 전화해 야권 지지자들의 행동을 ‘광란’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루킨 우크라이나 특사도 “EU 진영이 야누코비치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했다가 ‘테러 세력’을 편들어 정권 타도를 외친다”고 성토했다.
◇시위대, 야누코비치 호화 대저택 공개=야권 시위대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버리고 떠난 호화 대저택 ‘메쥐히랴(Mezhyhirya)’를 점거해 일반에 최초 공개했다. 수도 키예프에서 약 20㎞ 떨어진 근교에 있으며 지금껏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최측근을 제외하면 출입이 엄격히 금지됐다. 이 곳의 넓이는 350에이커로 여의도 면적의 절반 수준에 달하고 서울대 관악캠퍼스와 규모가 비슷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메쥐히랴 안에는 인공호수가 있고 15∼17세기 대항해 시대에 쓰인 대형 돛단배가 떠 있다고 전했다. 차고에는 옛 소련시대 승용차와 오토바이 전시품이 줄지어 서 있고 골프장, 헬기착륙장, 개인 동물원까지 있다. 시위대와 시민들은 동물원 타조, 공작새, 돼지 등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