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교도소 '황제노역' 일당 5억 '때린' 향판, 5만원을 착각했을 것이다

[전정희의 스몰토크]교도소 '황제노역' 일당 5억 '때린' 향판, 5만원을 착각했을 것이다

기사승인 2014-03-25 11:25: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2. ‘속대전에 보면 수령 가운데 가족을 지나치게 많이 데리고 간 자와 관비와 몰래 간통한 자는 모두 적발해서 파면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위로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아래로 식객을 거느리고 또 노비까지 데리고서 온 집안이 이사해 간다면 모든 일이 얽히고 꼬여 사사로운 일 때문에 공무가 가려지고 정사가 문란해질 것이다.’

3. 한 지역에서 오래 일한 판사, 즉 향판(지역법관)의 ‘황제노역’ 판결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장병우(60) 광주지법원장은 4년 전 508억원 법인세 탈세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재호(71)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해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습니다. 또 “벌금 대신 노역을 하면 1일 5억원으로 환산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장 원장은 당시 판결문에서 “818억원 세금 추징금을 낸 점, 개인 재산을 출연해 그룹 회생에 힘쓰고 지역경제 피해를 최소화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습니다.

4. 그런데 정작 허 전 회장은 4년 간 해외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2일 귀국해 49일 노역으로 254억원의 벌금을 때우게 됐습니다.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하루 8시간 쇼핑백을 만들거나 두부·가구 등을 제조한답니다.

5. 도무지 상식을 가지고 접근해도 이해 불가입니다. 쑥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똑바로 자란다고 했는데 삼밭은 아닌 듯 합니다.

6. 장 원장은 지역 명문 광주일고와 서울법대를 나왔습니다. 그 시절 이러한 스펙이면 ‘두뇌의 총명함’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하늘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신탁 받은 정의가 그에게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튼 그는 광주민주화항쟁 몇 해 뒤, 즉 그 학살을 일으킨 전두환 대통령 재임 기간 중인 1985년 광주지법에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과 2000대 초반 광주에서 가까운 순천지원에 일한 것 빼고 계속 광주에 머물렀습니다. 대주그룹 역시 광주에 기반을 둔 지역 굴지의 업체입니다.

8. ‘토호’(土豪)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 권력과 어느 정도 대립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향촌에 토착화한 재지지배 세력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대개 수령 및 이(吏)·향(鄕)층과 결탁해 사적 이득을 취하죠. 토호들에겐 지방관과 결탁해 재지적 기반을 지니는 것이 필수입니다.

9. 대체 판관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사물을 꿰뚫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 하나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법의 정의’ 아닌가요? 대중이 “판사님”하며 고개 숙이는 이유가 뭡니까? 판사가 ‘법의 정의’를 대중에게 들이 밀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그 정의 앞에 예를 표하는 마음으로 고개 숙이는 겁니다. 자연인 판사에게 고개 숙이는 게 아니고요.

10. ‘속대전’(續大典)은 왜 고을 수령에게 가족을 대동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걸까요? 온 가족을 대동하고 부임한다면 속성상 그 가족이 수령 노릇 하려 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수령의 임기도 900일에 불과했고 부모를 찾아뵙는 일도 노부모가 아니면 3년에 한 번으로 제한됐습니다. 성묘는 5년에 한 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향판 가족 대개가 그 지역사회 삽니다.

11. 그 수령이 지켜야할 7가지 책무(守令七事) 중 일곱 번째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향리의 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종식시키도록 할 것’

12. 요즘 식으로 해석하자면 지방민을 괴롭히는 지방행정관이나 토착세력을 엄벌하란 얘기죠. 한데 향판은 상식적으로 그 지역 사회 안에 가족이 있고, 학연이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녀”라는 소리에 판단을 흐리겠죠. ‘법의 정의’가 무뎌지는 겁니다.

13. 아, 수령칠사 중에 다섯 번째 대목입니다.

‘부역을 공평하게 부과하여야 한다.’

14. 장 원장은 ‘교도소에서 쇼핑백 등을 만드는 데에 일당 5억’이라고 판결했으니 공평한건가요? 5만원을 착각한 거 아닐까요? 그리 믿고 싶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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