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의 통신신호=실종기(편명 MH370)인 ‘보잉 777-200ER’ 기종은 주로 두 개의 통신시스템을 통해 지상과 교신한다. 항공기 운항정보 교신시스템(ACARS)과 무선통신장치다. 하지만 실종기 조종석은 8일 오전 1시19분 “다 괜찮다. 좋은 밤(All right, good night)”이라는 마지막 무선을 끝으로 모든 통신시스템을 껐고 관제센터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
당시 조종석에서 기상상황 등을 메시지로 전하는 ACARS의 메인장치도 물론 꺼졌다. 하지만 운항시간 정보를 자동 전송하는 ACARS의 ‘핑(ping)’ 신호는 한 시간에 한번 꼴로 발신됐다. ACARS는 비행기 사고 시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에만 의존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이번에 빛을 발한 것이다. 인말새트 위성이 핑 신호를 놓치지 않고 수신한 게 결정적이었다. 실종기는 8일 오전 1시11분부터 8시11분까지 총 8번의 핑 신호를 위성에 보냈다. 인말새트 전문가들은 이를 토대로 실종기가 최소 5시간 운항했음을 알아냈다.
다음 난관은 실종기의 비행경로. 인말새트의 크리스 맥라린 부회장은 “인공위성이 궤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종기가 보내는 핑 신호의 정보와 실제 위치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해 도플러 효과를 적용해 실종기가 이동했을 법한 최북단 경로와 최남단 경로 두 가지를 분석했다”고 CNN방송에 말했다.
도플러 효과란 파동을 발생시키는 물체(실종기)와 관측자(인공위성) 중 하나 이상이 움직이고 있을 때 발생하는 효과로, 둘 사이의 거리가 좁아질 때에는 파동의 주파수가 더 높게, 거리가 멀어질 때에는 반대로 관측된다. 맥라린 부회장은 “실종기는 시속 833.4㎞의 속도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됐으며 같은 기종의 비행궤적을 분석한 끝에 인도양 남부해역에 추락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덜 풀린 수수께끼=하지만 실종기의 정확한 추락지점과 원인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일단 누군가 고의로 항로를 바꾼 것은 분명하다. 결국 납치범이 그랬거나 조종사의 자살 가능성, 기체 이상 발생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조종석의 음성녹음이 기록된 블랙박스만이 마지막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길어야 2주 가량 위치신호를 보내는 블랙박스 인양을 위해 미국은 무인잠수정(AUV) 등 첨단 수중탐사 장비를 말레이시아에 보냈다. 2009년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2년 만에 3900m 해저에서 회수한 프랑스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인도양 기상이 워낙 좋지 않아 수색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날도 풍랑이 심해 수색이 중단됐다.
한편 여객기 실종 후 초동대응부터 마지막 추락 결론까지 17일 동안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오락가락 브리핑에 마지막 기자회견 직전 ‘생환자 없다’는 짤막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통보는 유족들의 분통을 샀다. 수색 한계를 일찌감치 인정하고 국제 공조를 서둘렀더라면 ‘최악의 비행기 실종사건’이란 오명은 피했을지 모른다. 인말새트 관계자는 “실종 다음날인 9일부터 우리 분석을 토대로 실종기가 인도양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정보를 말레이시아에 전달하려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12일에서야 공유가 됐고, 공식 발표는 그로부터 또 사흘 뒤 이뤄졌다”고 아쉬워했다. 말레이시아가 인도양 수색을 본격화한 건 실종 일주일 만인 15일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