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따르면 107명의 사망자를 낸 일본철도(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가 일어난 지 9주년을 맞아 개인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현행 형법을 개정, 지휘·관리 책임이 있는 거대 기업에도 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는 ‘조직벌(組織罰)’ 도입 논의가 대형사고 피해 유가족을 중심으로 활발하다.
이들은 사고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철도회사 간부들이 법정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는 것을 보면서 조직벌 도입을 요구하게 됐다.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는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8분쯤 JR 여객철도인 후쿠치야마선이 쓰카구치~아마가사키 역 구간에서 탈선, 인근 아파트와 충돌해 승객 106명과 기관사 1명 등 총 107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탈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기관사의 과속 운전이었지만, 자동열차정지장치 미설치, 관행적인 과밀 운전, 징벌적 교육 등 승객 안전보다 속도에 치우친 JR의 관리 부실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실제 기관사는 이전 정차 역에서 지연 운행에 따라 징벌적 교육이 부과될까봐 이를 만회하려다 과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고 후 열차 운영을 맡았던 JR 서(西)일본의 전직 사장들은 형법상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들이 사고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고, 조직 차원의 안전관리 체제 미비는 다뤄지지 않았다. 이는 ‘범죄는 의사를 가진 사람의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생물이 아닌 법인(기업)은 처벌할 수 없다’는 형법의 원칙 때문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독점금지법, 도로교통법 등에는 회사 직원뿐 아니라 고용자인 기업도 처벌할 수 있는 ‘양벌규정’이 있지만 형법에는 양벌규정이 없다.
후쿠치야마 사고 유가족들은 3월 조직벌 도입에 대한 연구모임을 발족한 데 이어 2012년 야마나시현 터널 붕괴사고 피해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들과 연대해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조직벌 도입 여론이 법제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치인들이 기업에 불리한 법률을 만들지도 의심스럽고 기업에 형사 처벌할 수단은 결국 벌금형밖에 없어 자성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회의론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대형사고 피해자 유가족의 노력 속에 2007년 대중교통 사고와 관련한 기업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률이 도입됐고 이후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고예방대책을 진행, 사고가 30%가량 줄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