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공포, 전쟁이라도 난다면 국가가 나를 지켜줄까?

세월호 참사의 공포, 전쟁이라도 난다면 국가가 나를 지켜줄까?

기사승인 2014-05-11 11:57: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희생자 유가족을 폄훼하는 글들이 인터넷에서 적잖이 눈에 띕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후 20여일이 지나자 네티즌의 공분을 살 만한 적의 띤 말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정부의 미흡한 조치에 항의하는 유가족 시위를 보도한 기사의 댓글을 보면 우리 사회의 갈등과 증오가 임계점에 올라와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들딸의 죽음마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비열한 유가족이라면 더 이상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댓글은 순진한 편에 속하고요. 이념, 지역 문제까지 이 참사 상황에 끌어들여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소위 ‘일베’ 현상입니다. 몇몇 오피니언 리더라는 이들조차 이 현상에 합세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오늘, 참사가 가져다준 국민의 충격과 분노 그리고 애도의 시간들을 지켜보면서 ‘죽어도 평화’가 이 좁은 한반도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사고가 발생했던 날, 가라앉는 배를 속수무책으로 대해야 했던 비극적 상황은 전쟁 참화와 진배없었습니다. ‘어어어’ 하는 사이 꽃다운 청춘들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고에도 그런데, 하물며 6·25전쟁과 같은 비극이 이 땅에 다시 도래한다면…. 생각하는 것조차 몸서리쳐지는 일입니다. 종전 61년, 남북 간에 군사력이 차이가 나서 “한번 붙어보자”는 댓글식 사고로 설령 재래식 전쟁을 한다 하더라도 상상 못할 인명 피해가 나는 것은 예상하고도 남을 일이죠.

6·25 당시 17세 소년이었던 김현철 전 방송위원회 사무총장의 최근 증언입니다.

“1950년 6월 28일 아침이었다. 서울은 인민군에 접수됐다. 완장을 찬 사람들이 탱크를 몰고 시내에 들어온 인민군을 환영하라며 가가호호 방문, 거리로 내몰았다. 서울 장충동에 살던 나와 동생 둘은 부모를 대신해 나갔다. 인도는 인산인해였다. 동대문운동장(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야구장 옆에 소방서 망루에 미처 퇴각하지 못한 국군이 숨어 있었다. 이를 적발한 탱크가 포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어디인지 알지 못할 총알이 날아들었고 모두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동생들도 놓치고 을지로6가 교회 골목으로 도망쳤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총에 맞아 팔뚝이 끊긴 채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것이 끔찍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스물넷 청년이었던 KBS 원로 아나운서 위진록의 회고록 한 대목.

“우리집과 지척 간에 서울 종로경찰서 서장 관사가 있었다. 공산군이 후퇴한 직후 그 집 앞마당에 매장된 수십 구의 시체가 발굴되었다. 반동분자라고 해서 저들이 학살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했다. 모두 보통 시민이었다. 그중 등에 어린 아이를 업은 채 죽은 젊은 아낙네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여자의 손목을 동여맨 철사의 빛을 잊을 수 없다.”

전시가 되면 국가는 맞닥뜨린 적과 싸워야 하므로 평화로운 시기와 같이 국민의 안전과 재난 구조에 일일이 책임지지 못합니다. 따라서 국민은 김현철·위진록과 같이 본능적 생존을 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에 놓이게 되죠. 두 사람은 깊은 상처를 부여안고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세대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화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한 증언을 듣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숨’을 인터넷 전쟁 게임에서 보여주는 놀이쯤으로 여기고 폭력적 댓글로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무개념 네티즌’이 활개를 칩니다. ‘무개념’ 이념의 스펙트럼이 ‘세월호 참사’를 놓고도 갈라져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 현상을 왜곡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선동은 자신들만의 도덕적 순결성이나 정의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이 정치에 동원됐을 때 폭력을 낳고, 종국에는 전쟁을 낳습니다. 전쟁은 참사도 아니고 재앙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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