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영상] 연장전 120분에 승부차기까지. 혈투를 마친 전사가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카메라가 그의 등을 따라갑니다. 오렌지색 관중들이 일어나 박수를 칩니다. 등번호 11번에 대머리. 2014 브라질월드컵 전 경기 풀타임 소화한 네덜란드 스트라이커 아르연 로번(30)을 기립박수로 위로합니다.
로번은 관중석 앞에 잠깐 멈춰 두 손을 쥐었다 펴는 ‘잼잼’을 합니다. 이어 광고판을 넘어 객석으로 다가갑니다. 그곳엔 금발 미녀인 엄마 품에 안겨 한 꼬마가 울고 있습니다. 아빠의 얼굴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브라질까지 날아 온 로번의 아들 루카(6)입니다. 로번이 걸어간 것은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사진).
로번은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빛나는 별 중 한 명입니다. 10일 브라질 상파울루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4강전은 물론이고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습니다. 치고 달리다 쏘는 슛, ‘치달골’ 공격수입니다. 체력소모가 극심한 포지션입니다. 더구나 네덜란드는 8강전 4강전 모두 승부차기까지 갔지요. 그럼에도 로번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연장전 종료 직전까지도 변함없는 스피드를 보여줬습니다.
로번이 그라운드로 돌아오는데 팀 동료 로빈 판 페르시가 로번의 배를 툭 칩니다. 그리고 로번의 아들 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따봉’ 포즈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울지마, 아빤 최선을 다했단다.”
로번이 아들을 달래는 모습, 그리고 판 페르시의 ‘섬스업(thumbs up)’ 포즈에 세계 네티즌들이 감동했습니다. ‘Democracy…’라는 이름의 유튜브 이용자는 “로번과 판 페르시는 진정한 젠틀맨이다. 아르헨티나 팬으로부터 존경을 담아”라고 남겼습니다. 박주영은 배워야 합니다. 따봉은 이럴 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진짜 전사들은 젠틀맨입니다.
로번 부자(父子)를 보니 한국 축구의 대표 부자 차범근 차두리가 생각났습니다. 홍명보 감독의 유임 사실이 발표된 지난 3일 차두리는 트위터에 딱 한 줄을 올렸습니다. “98년에는 왜? 혼자서” 이 글은 1000회 넘게 리트윗되면서 파장을 낳았습니다.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이번과 똑같은 2패를 당하고 경질됐을 때를 떠올렸겠죠.
홍명보 감독이 10일 결국 사퇴했습니다. 사필귀정입니다. 한국 축구는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대표팀 중에도 아빠가 많습니다.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울지마, 아빤 최선을 다했단다”라고 말할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