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슈추적] 연재순서
① 에볼라바이러스 FDA 승인 전 약물 사용 논란, 안전이 우선? 유효성이 우선?
② 신약 개발단계의 전 과정은?
③ [인터뷰]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교수 “실험용 약물 지맵, 안전성 담보하긴 어렵다”
④ [현장에서/장윤형 기자] 에볼라바이러스 대책, 정부 실무자는 없나요?
전 세계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약 1100여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현재까지 정식으로 허가된 에볼라 치료제와 백신은 없다. 하지만 최근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국인 2명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실험약 지맵(ZMapp)을 투여받아 호전되면서 ‘실험약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 의료윤리위원회는 이번 에볼라 창궐사태를 ‘글로벌 공중보건 위기상황(global health emergency)’ 선포하고, 지난 11일에는 각 계의 전문가들을 소집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실험약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결국 긴급한 사태라고 판단한 WHO는 에볼라 환자들에게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실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제약사에서 획기적인 약물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적게는 수백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식으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치료제나 백신을 투약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무작위로 사용할 경우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라 하더라도 전 세계적 비상사태를 대비해 임시로 약물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약의 효능 대비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위험부담, 사회 윤리적 문제 등의 면밀한 이해득실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실험약물 투여 ‘의료윤리에 위배 되냐, 사람 생명 우선이냐’=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실험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WHO와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치료제를 직접 투약하는 처방을 내렸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맵 등의 실험용치료제가 동물실험에서는 효과가 입증됐으나 사람에서는 안전성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이번 에볼라 창궐 사태는 워낙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WHO가 약물사용으로부터 오는 위험부담 등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 윤리적 기준에 따라 약물 사용을 임시로 허가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WHO 의료윤리위원회는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실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크게 3가지다. 실험약은 일정한 윤리기준에 따라 사용돼야 한다는 조건이다. 구체적 윤리기준으로는 ‘치료과정에서의 투명성’, ‘정확한 정보제공에 입각한 환자와 의료진 간의 사전동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지역사회의 의견 존중’ 등이 있다.
또한 과거 신종플루 사태에 이어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각종 질병의 판데믹(pandemic, 세계적 전염병) 현상 가능성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약물 투여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신약에 대한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이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사태는 긴급 사태에 대비한 치료제의 동정적 사용을 허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치사율이 최대 90%로 ‘죽음의 바이러스’로 알려진 에볼라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지고 있음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품(FDA)이 승인받지 않은 치료제라 하더라도 긴급하게 사용을 허락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이를 적용키로 했다.
질병 치료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임상시험 약물의 사용을 예외적으로 승인하는 게 FDA의 동정적 사용 규정이다. 동정적 사용은 말기암 환자 등 불치병 환자가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경우에 보건당국이 시판승인 전 신약을 공급해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는 제도를 일컫는다.
김우주 교수는 “실험단계의 치료제를 사람에게 직접 투여하기 위해서는 미완성 약물의 동정적 사용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신약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동정적 약물 사용에 대한 제도가 정착돼 왔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말기암 환자 등을 위해 일부 주에서 FDA 승인이 없더라도 임상시험 중인 신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Try) 법안’이 마련돼 있다. 콜로라도 주지사는 지난 5월 FDA 승인이 없더라도 임상시험 중인 신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서명한 바 있다. 이 법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FDA의 승인 절차를 생략하고 임상시험을 하고 있는 약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말기암이나 치료제가 없는 질병 등에 대해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고자 하는 환자 등에게 의사의 처방만으로 제약사에 신약 사용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FDA 승인을 받기 전 약물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허가가 나지 않은 페라미비어(peramivir)를 사용하도록 승인한 바 있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미완성 치료제 사용으로 인한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보건 전문가는 “에볼라 바이러스 등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 환자나 말기암 환자들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이들에게 좋은 치료제가 있다면 윤리적 문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실험 약물을 사용해 환자의 건강이 회복됐다고 했을 경우, 이 약이 위약 대비하여 효능을 보였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본인의 면역력이 우수하여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회복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긴급 사태에 대비한 약물 투여 후에는 꾸준히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식약처, 에볼라 사태 등에 대비한 치료 대비책 “나 몰라라”=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우리나라는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감염병 위험에 대비한 약물 조기 승인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지 않다. 또한 긴급 사태에 대비한 ‘동정적 약물 사용’에 대한 이해도 전무하다.
익명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판데믹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각종 감염병 등에 대비한 비상대책 매뉴얼조차 없다”며 “감염병 등에 대비한 약물 조기 승인 등 동정적 사용에 대한 구체적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이는 세월호와 다를 게 없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만 대체 약물이 없는 말기 환자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정식 시판을 받기 전 약물을 조기에 도입하는 ‘동정적요법(EAP)’이 유사하게 있다는 것이 식약처의 설명이다. 2001년 획기적인 백혈병 치료제로 알려진 노바티스의 ‘글리벡’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들여왔을 때, 이 제도가 도입이 됐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시판 전에 안전성 검증이 안된 약을 함부로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였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청(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폐암치료제인 이레사도 폐암 말기 환자들의 요구로 인해 동정적 요법이 적용된 약물이다. 그러나 이는 제약사와 환자가 원할 경우에 신청할 수 있는 제도로 국한된다.
에볼라와 같은 비상사태에 대비한 약물 승인 제도는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주치의 판단에 따라 말기암 환자 등 응급한 환자에게 임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약사법에 있다”며 “다만 이것도 제약사가 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의향이 있어야 적용되는 제도다. 대부분 민원에 의해서만 처리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될 경우에 대비한 정부의 치료제 및 백신 확보 대책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 질병관리본부는 답변을 회피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