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어학연수를 준비하다 ‘비소세포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9년째 투병중인 박소연(31)씨는 한 달 약값만 1000만원이 드는 고가의 약값으로 인해 치료 중단 위기에 처했다. 박씨는 암이 상당히 많이 전이된 말기 폐암 환자였다. 하지만 그는 9년간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내고 있다. 항암치료 도중 출산을 해, 현재 3살 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박씨는 “항암치료제 내성이 생겨 다른 약은 쓸 수도 없다. 유일한 희망은 ‘잴코리’라는 약물이다. 하지만 값비싼 약값을 감당하기엔 너무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폐암 환자들을 위한 좋은 치료제가 있지만 정부에서 건강보험 급여로 적용해주지 않아 환자들은 값비싼 약값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이자의 폐암 치료제 ‘잴코리(성분명 크리조티닙)’다. 이 의약품은 현재 정부에서 건강보험 급여로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이 약을 먹는 데 드는 한달 비용만 무려 1000여만원이 든다. 한 알당 약값은 16만원이 든다. 1년이면 약 1억2000만원이다.
이 약은 역형성 림프종 인산화효소(ALK)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의 치료제로 적응증이 있다. 이 약의 대상 환자수는 약 200~300명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현재 비급여로 이 약을 복용하는 환자수는 약 60여명(올해 8월 기준)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신약의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 약은 대상 환자수가 적다는 이유로 비급여 판정이 났다. 잴코리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따르면 잴코리는 ▲2012년 2월, 진료상 필수약제로 잴코리 급여 신청 ▲2012년 11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약제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결과에서 비용효과성 불분명으로 비급여 판정 ▲2013년 8월, 경제성평가 자료를 포함해 급여평가 재신청 ▲2014년 7월: 비용효과성 불분명으로 인한 비급여 판정 등의 과정을 거쳤다.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면, 잴코리 출시 직후 화이자는 ALK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잴코리를 ‘진료상 필수약제’로서 급여 신청했다. 하지만 심평원 측은 당시 “잴코리와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약제인 페메트렉시드 혹은 도세탁셀이 쓰이고 있으므로 잴코리가 진료상 필수약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결국 2012년 잴코리는 이들 약제에 비해 비용효과성이 불분명하므로 급여 적정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화이자는 잴코리의 비용 효과성을 입증하는 추가 자료를 준비해 심평원에 제출했다. 그럼에도 올해 7월 개최된 2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 결과에서도 역시 비급여 판정을 받았다. 심평원 측은 “잴코리의 효과 및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됐으나 비용효과성 불분명”이라고 평했다. 현재도 제약사와 환자들은 잴코리 출시 이후 정부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험 및 약가 관련 절차에 따라 급여 적용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결국 환자는 고스란히 자비로 이 약을 먹을 수 밖에 없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잴코리는 소수의 환자가 대상자라는 이유로 혁신적인 효과를 지닌 약제이지만 현 급여 제도하에서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경제성을 입증해야 하기에 보험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 대표는 “과거 획기적인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급여 과정과 닮아있다”며 “좋은 신약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정부에서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로 인해 수많은 희귀질환이나 희귀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좋은 신약이 나와도 고가의 약값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4대중증질환 공약을 발표한 이후 이와 같은 ‘환자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용진 서울시립북부병원장은 “정부가 4대 중증질환 공약을 발표했지만 4대 중증질환 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질병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정부가 이러한 희귀질환 등에 대해서도 보장성 강화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형평성의 원칙과, 소수의 희귀암 환자들을 위한 보장성 강화 이 두개의 사다리에서 정부도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이 최상의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