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0·구속기소)이 ‘땅콩 리턴(회항)’ 사건 당일 승무원과 사무장을 “그X” “그○○”라고 욕하면서 파일로 손등과 가슴을 가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조 전 부사장의 “이륙 준비 중인 것을 몰랐다”는 주장과 달리 사무장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섰다”는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이 비행기 당장 세워. 나 이 비행기안 띄울 거야. 당장 기장한테 비행기 세우라고 연락해”라며 강제로 비행기를 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실이 공개한 검찰 공소장에서 확인된 내용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했다.
지난해 12월 5일 0시37분(현지시간) 미국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86편에 조 전 부사장이 1등석 승객으로 탑승했다. 1등석에는 조 전 부사장을 포함해 승객이 단 2명뿐이었다.
6분 뒤인 0시43분 승무원 김모씨가 미개봉 상태의 견과류 봉지를 쟁반에 받쳐 가져왔다. 조 전 부사장은 “이렇게 서비스하는 게 맞느냐”며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당시 기내에 있던 사무장과 승무원들은 이륙 준비를 위해 안전벨트와 짐 보관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었다.
사무장 박창진씨는 즉시 1등석 칸으로 와서 매뉴얼이 담긴 태블릿 PC를 가져다줬다. 조 전 부사장은 “내가 언제 태블릿을 가져오랬어, 갤리인포(기내 간이주방에 비치된 서비스 매뉴얼)를 가져오란 말이야”라고 했다. 박씨가 주방으로 뛰어가 파일철을 가져오자 조 전 부사장은 파일철로 팔걸이 위에 얹힌 박씨의 손등을 3~4차례 내리치며 “아까 서비스했던 그X 나오라고 해, 당장 불러와”라고 고함쳤다.
김씨가 눈앞에 나타나자 조 전 부사장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면서 “야 너, 거기서 매뉴얼 찾아. 무릎 꿇고 찾으란 말이야. 서비스 매뉴얼도 제대로 모르는데, 안 데리고 갈 거야. 저X 내리라고 해”라고 외쳤다.
조 전 부사장은 1등석 출입문 앞으로 걸어가 박씨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이 비행기 당장 세워. 나 이 비행기 안 띄울 거야. 당장 기장한테 비행기 세우라고 연락해”라고 호통쳤다.
박씨는 “이미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기 시작해 비행기를 세울 수 없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상관없어. 네가 나한테 대들어. 어따 대고 말대꾸야”라고 꾸짖었다. “내가 세우라잖아”라는 말도 3~4차례 반복했다.
0시53분 박씨는 인터폰으로 “기장님, 비정상 상황이 발생해 비행기를 돌려야 할 것 같다”고 보고했다. 이미 22초간 약 20m를 이동한 항공기는 멈춰섰다. 박씨는 “부사장이 객실 서비스와 관련해 욕을 하며 화를 내고 있고 승무원의 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추가 보고했다. 기장은 곧바로 항공기를 탑승구 게이트 방향으로 돌렸다.
박씨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말로만 하지 말고 너도 무릎 꿇고 똑바로 사과해”라고 했다. 박씨도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은 화를 참지 못했다. 김씨 가슴 부위를 향해 파일철을 던진 뒤 좌석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김씨 어깨를 밀치면서 3~4m가량 출입문 쪽으로 몰고 갔다. 파일철을 돌돌 말아 벽을 수십회 내리치며 “너 내려”라고 했다. 박씨에게는 “짐 빨리 가져와서 내리게 해. 빨리”라고 다그쳤다.
조 전 부사장은 뒤늦게 변경된 매뉴얼에 따라 김씨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적반하장격으로 박씨에게 ‘화살’을 돌렸다.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 그○○ 오라 그래”라고 했다. 이어 “이거 매뉴얼 맞잖아. 네가 나한테 처음부터 제대로 대답 못해서 저 여승무원만 혼냈잖아. 다 당신 잘못이야. 그러니 책임은 당신이네. 네가 내려”라고 소리쳤다. 박씨를 출입문으로 밀어붙인 뒤 “내려. 내리라고”라는 말을 반복했다.
기장은 오전 1시쯤 관제탑에 “사무장 내리고, 부사무장이 사무장 역할을 한다. 추가로 교대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교신했다. 박씨는 하기에 앞서 조 전 부사장과 다른 1등석 승객에게 사과했다. 조 전 부사장은 “내리자마자 본부에 보고해”라고 말했다. 5분 뒤 박씨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승객 247명을 태운 비행기는 1시14분이 돼서야 이륙을 위해 다시 활주로로 향했다. 37분간의 소동으로 항공기 출발이 늦어졌지만 기내에는 한마디의 사과 방송도 없었다.
조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