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쎄시봉’은 참 영리한 영화다. 한국 포크 음악계의 큰 산 쎄시봉을 스크린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정작 그들 이야기가 중심은 아니다. 남자의 첫사랑이라는 감성적인 소재를 다뤘다. 팩션과 픽션을 적절히 버무려 그럴싸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전설의 듀오 트윈폴리오가 원래 세 명으로 구성된 트리오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실제 쎄시봉 트리오에는 원년멤버 이익균씨가 있었다. 3개월 정도 함께 활동을 했지만 방송 데뷔를 앞두고 그가 군 입대를 하면서 트리오는 해체됐다. 이후 담당PD의 설득으로 윤형주와 송창식이 듀엣을 결성해 트윈폴리오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하지만 영화에선 전혀 다른 얘기가 펼쳐진다. 김현석 감독은 사실을 바탕으로 대강의 틀을 짜놓고 사이사이 지어낸 이야기들을 채워 넣었다. 어디까지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은 오근태(정우·김윤석)다. 쎄시봉 멤버들의 뮤즈로 나오는 민자영(한효주·김희애)도 가상인물이다. 조영남(김인권), 이장희(진구·장현성). 윤형주(강하늘), 송창식(조복래) 등 쎄시봉 멤버들은 실제 이름 그대로 등장하지만 세세한 설정들은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오근태와 민자영의 애틋한 사랑이 중심내용이다. 20년간 이어진 두 사람 인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처음 사랑을 느낀 남자의 미묘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그렸다. 많은 남성 관객들의 가슴을 울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건축학개론’(2012) 2탄이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쎄시봉이라는 제목만 보고 선택했다면 ‘속았다’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쎄시봉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쎄시봉 음악이 주인공”이라는 게 김현석 감독의 설명이다. 실제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웨딩 케이크’ 등 가사를 뼈대로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음악 완성도에 크게 신경을 쓴 점도 위안이 된다. 정우, 강하늘, 조복래 세 배우가 3개월간의 피나는 연습을 통해 하모니를 이뤘다. 세 배우의 가창력과 기타 실력이 수준급이다. 특히 강하늘의 청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송창식을 완벽히 재현한 신인배우 조복래는 진주를 발견한 느낌을 들게 한다.
아쉬움이 없진 않다. 음악과 우정, 사랑 얘기까지 많은 걸 다루려 하다 보니 다소 균형감을 잃었다. 극중 20대 시절에 비해 20년 뒤 이야기는 치밀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3:1 정도 비율로 다뤄지긴 했으나 단순한 분량 차이 때문만으로 보이진 않는다. 40대로 넘어가선 예상 가능한 신파로 흐르다 급히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쎄시봉’은 분명 흥행 요소가 다분한 영화다. 1970~1980년대 쎄시봉에 열광했던 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질만하다. 영화 ‘국제시장’,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며 불고 있는 복고 열풍도 긍정적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시기가 딱 들어맞았다. 더구나 ‘오늘의 연애’ 정도를 제외하곤 최근 극장가에 뜸했던 ‘로맨틱’ 영화니 말은 다 했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