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건강을 위해 사용한 살균제가 아이를 죽게 한 원인물질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김지현(가명)씨 부부는 그렇게 쌍둥이 아이들이 저세상으로 떠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 건강을 위해서 집 안에 가습기를 설치했는데, 그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온 살균제 성분이 아이의 폐 손상을 일으킬 줄은 몰랐던 것. 유해 화학성분이 다량 함유된 살균제는 정부가 판매를 허가한 대형기업의 제품이었다. 부모는 아이 건강을 위해 제품을 믿고 사용했을 뿐이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들은 500명 이상이다. 살균제 때문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국가가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국가가 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는 지난 1월 2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부모 박모씨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씨 등의 자녀들은 간질성 폐손상으로 2011년 2∼6월 사망했으며, 김씨 부부는 쌍둥이 아이들을 생후 20∼22개월 만에 잃었다. 이들은 국가가 살균제 업체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망한 당시의 연구 수준을 고려할 때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국가가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웠다고 본 것이다. 지난 2006∼2008년 아동들에게 급성 폐질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논문은 발표됐지만 논문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던 점 등이 근거가 된 것이다.
가습기 살균업체들을 규제할 제도적 수단이 당시에 없었던 점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당시 살균제는 세정제가 아닌 살균제제로 분류돼 기업들이 신고를 할 의무가 없었다는 것이 주요한 근거다. 질병관리본부가 폐질환에 대해 미리 역학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도 면책사유가 됐다. 급성 간질성 폐질환은 현행법상 ‘감염병’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부모들은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우리는 하루에 평균 15∼20개의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피부 미용을 위해 사용하는 각종 화장품, 청결을 위해 사용하는 손세정제, 치약, 주방세제 등에는 각종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다. 이러한 불안 때문인지, 독일이나 덴마크 등의 유럽에서 해외 직구를 통해 제품을 사들이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집에서 천연 제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 주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통해 인체에 치명적인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한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무분별하게 허가해주는 제품들로 인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안 벌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소비자 스스로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