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한류 틈타 활개치는 검은 상혼…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이민정(가명)씨는 2013년 2월 광대뼈 수술을 받기 위해 강남의 H성형외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실장은 해당 병원 원장이 “뼈 수술 경력이 16년 이상”이라며 소개했다. 수술 당일 병원 지하실에 있는 수술실에 들어간 이씨는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이씨와 동행한 보호자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병원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이씨는 수술을 받던 도중 마취에서 풀렸는데 한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수술 봉합을 하라고 떠넘기는 상황으로 추정되는 대화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후 수술 부위 통증으로 재차 내원했으나 병원은 해당 원장이 병원을 그만둔 상태라고만 한다.
# 이유리(가명)씨는 2012년 12월 F성형외과 상담실장에게 철저한 사후관리 및 100만원 가량의 가격 할인 등과 함께 수술을 권유받았다. A원장은 본인이 직접 수술할 것이라고 했으나 원장은 피해자의 얼굴만 그려놓고 수술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씨는 “수술 도중 마취가 풀려 눈을 떴는데 원장이 아니라 정체 모를 여자 서너 명이 얼굴을 당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황한 환자가 움직이자 여자들은 “앗, 움직인다!”며 서둘러 이씨를 마취시켰다. 한 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여섯 시간 정도 걸렸고 병원은 CCTV 공개를 거부하고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 환자는 현재 오른쪽 뺨에 흉터가 남아있다.
외모를 개선하고자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다가 각종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피해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러한 각종 성형수술 사고의 배후에는 일부 성형외과의 대리수술 등의 ‘불법수술’과 ‘사무장 병원’이 주요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릐대리수술 등 불법수술 행태 만연
성형수술을 하는 병원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유령수술(대리수술)’은 대표적인 불법행위로 지목되고 있다.
유령수술은 환자에게 전신마취제를 투여해 의식을 잃게 한 후, 처음 환자를 진찰하고, 설명 후 동의까지 받고 직접 수술을 하기로 약속했던 집도의사는 수술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수술도구를 이용해 수술하는 것을 말한다. 수술 후에도 환자에게는 마치 처음 약속했던 ‘집도의사’가 수술한 것처럼 속이기 때문에 환자는 ‘유령’에게 수술 받게 된 것과 다름없다고 해서 일명 ‘유령수술’이라고 부른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환자 동의 없는 유령수술은 의사면허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종사기이며 의료행위를 가장한 살인·상해행위”라고 규정했다.
유령수술은 어떻게 이뤄질까. 환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수술을 맡은 의사는 환자에게 수면마취제를 과도하게 투여한다. 환자가 잠에서 깨기 전에 대리의사인 유령의사(쉐도우닥터)는 수술실 마치고 나가기 때문에, 환자는 자신을 상담해준 그 의사가 수술한 줄 알게 된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 관계자는 “불법적 유령수술이 성행하는 이유는 수술실은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돼 있고 전신마취제를 이용해 환자가 의식을 잃게 되면 손쉽게 속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한 대형병원에서는 이러한 유령수술 집도의가 성형수술을 하다가 사고를 내 환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G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5명 피해자는 대리수술을 시행한 집도의사의 진술서를 통해 해당 수술이 ‘유령수술’임을 확인했다. 이는 한 집도의의 양심고백에 의해 밝혀졌다. 이 의사는 “병원 원장이 지시해서 대리수술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도 지난해 한 유명 성형외과의 의사와 고용된 의사의 근로계약서 문서가 올라와 논란이 된 바 있다. 계약서의 주요 내용은 대리수술에 대한 계약조건 내용이다.
이러한 문제는 성형수술 병원 뿐 아니라 척추관절병원 등 유명 네트워크 의원 등을 중심으로 ‘공장’식 성형수술이 횡행하면서 더욱 불거지고 있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의사)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이른바 공장식 성형수술 기관의 탄생이다. 실질적인 의료기관 소유주는 의사들을 고용해 콘베이어밸트 위에서 전자제품을 생산하듯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관에서는 의사들이 휴식시간이 없이 환자들 수술에 매달리기 일쑤고, 여러 수술장을 동시에 열어 놓고 메뚜기 뛰듯이 수술에 매달리며 수술하는 경우가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간호사, 마취과 의사들도 제대로 고용하지 않거나 고용하더라도 미숙련 인력을 고용하고, 수술재료 등을 저질 재료로 사용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미국 뉴저지 대법원은 1983년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환자의 신체를 칼로 절개하여 손을 집어넣는 행위는 ‘의료’가 아니라 ‘사기, 상해, 살인미수’로 기소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정당한 수술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면허증의 유무’보다 ‘환자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우선이라는 의미이다.
즉, 환자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모든 권리는 환자가 수술을 허락한 의사에게만 있고, 환자로부터 위임된 집도의사의 권리는 환자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양도될 수 없다. 또 집도의사조차도 환자가 허락한 수술부위에 대한 신체훼손행위만을 할 수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병원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환자동의 없는 집도의사 바꿔치기는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수술실에서 전신마취약으로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한 후 숙련도가 의심되는 의사에 의해 자행되기 때문에 사상 최악의 반인륜범죄”라고 규정했다.
유령의사 수술로 인해 병원은 엄청난 이윤을 창출해 왔다. 병원 내 조직관리만 잘하면 발각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유령의사도 면허증이 있는 의사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수사기관조차 유령의사로 인한 범죄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 대표는 “유령수술은 의사면허제도의 근간을 훼손해 의사 면허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심각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사무장병원이나 무면허의료행위에 준해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통상적으로 한 개인병원 원장이 하루에 수술할 수 있는 환자 수는 많아야 20~30명이다. 논란이 된 일부 유령수술을 시행하다 적발된 대형병원의 환자 수는 하루 평균 100~200명 안팎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의사들의 전언이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필러나 보톡스 시술 등의 비교적 간단한 시술은 많은 환자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양악수술과 같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수술의 경우에는 수술 당 평균 5~6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하루에 2~3명의 환자만 수술이 가능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릐사무장병원, 면허 대여 의사 “고작 면허 3개월 정지인데 뭘”
유령수술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의사의 명의만 빌려 비의료인이 병원을 개설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이다. 사무장병원은 현행 의료법상 금지 대상이다. 이러한 불법 사무장병원은 국내 전체 개원 병원의 20~30%로 추정되고 있다. 돈벌이가 잘되는 성형수술은 사무장병원 운영을 원하는 돈 많은 사업가의 노림수가 되기 쉽다. 실제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중에는 사무장 병원 형태로 운영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곳도 있다. 이 곳에는 중국인 등 해외환자가 많다. 주로 브로커 등을 통해 사무장병원으로 고객들이 몰려온다.
제보에 따르면 사무장병원에서 면허를 대여해주며 일하는 의사는 한달 월급으로 평균 5000만원과 인센티브를 받는다. 한 의사는 “월급을 많이 받는 만큼 무리한 수술이 강행될 수 밖에 없고, 의료사고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예고된 참사는 발생했다. 돈벌이로 전락한 한 성형외과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 실제 서울 청담동 K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던 중국인 여성 환자는 수술을 받던 중 심정지가 발생해 인근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 중국 여성은 프로포폴로 마취를 하고 눈, 코, 지방이식 등 여러 곳의 성형수술을 시행했으며 대략 6시간 가량 수술이 진행됐다. 검찰에 따르면 K성형외과의 경우 대표원장은 의사 K모씨로 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사무장병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사무장 병원은 돈벌이가 가장 우선이고 환자 안전은 뒷전이 되기 쉽다. 그렇다보니 성형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고 안전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사고가 나기 쉽다”고 강조했다.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보험 대상이 되는 급여 항목에 대해 대부분 환수를 한다. 문제는 성형외과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수술들이 비급여로 이뤄져 있어 사무장병원임을 적발하더라도 환수할 비용이 없다. 사실상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되면 의사는 3개월 면허 정지만 받으면 된다. 이후 다시 의료행위를 하면 된다.
차상면 성형외과의사회장은 “사무장병원 등 불법 의료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사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불법을 저지른 의사에게 3년 이상의 면허정지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 회장은 “다만 양심고백을 한 의사에게는 면허정지 기간을 현행대로 3개월 정도로 줄여야 한다. 그래야 양심고백을 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성형수술이 이뤄지는 사무장병원에 대해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