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 A씨(38)가 격리 조치를 무시하고 대형 행사에 연달아 참석해 1500여명이 노출됐다”고 밝힌 것과 관련, 해당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이 박 시장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 A씨도 “박 시장이 말한 것과 같은 개념 없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은 5일 A씨가 “사전 격리 조치를 당한 적이 없다”며 “100%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A씨 감염의 원인이 된) 14번 환자는 내가 진료한 환자가 아니다”라며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날인) 31일 전까지는 내가 메르스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27일) 혈관의 일부가 막히는 ‘색전증’으로 수술이 급하게 필요한 환자가 응급실에 있었고, 그 환자의 초음파를 보기 위해 응급실에 약 40분 정도 머무른 적이 있을 뿐”이라며 “14번 환자가 누구인지, (응급실 안) 어디에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이어 “31일 아침 회진을 하는데 27일 응급실에서 치료했던 색전증 환자가 메르스 확진 환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격리 대상이 되어 있더라”며 “그때 처음으로 ‘내가 메르스에 감염됐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30일 오전에 (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한 것이 맞고, 저녁에 재건축 조합 총회에 참석한 것도 맞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메르스 감염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메르스 의심자인 상태에서 대형 행사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이 A씨의 증상에 대해 “29일부터 경미한 증상이 시작됐고, 30일 증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A씨는 “중학교 때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했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31일 이전에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다르다고 생각할 만한 증상은 전혀 없었다”며 “100% 틀린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A씨는 “31일 아침부터 가래가 나오기 시작해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예정된 심포지엄도 가지 않았다”면서 서울시 발표와 달리 “31일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는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나자 “곧바로 자가용으로 집으로 퇴근했고, 2시간쯤 자고 났는데에도 열이 나 병원 질병관리실과 보건소에 연락했다”고 했다. 이후 보건소 담당자가 집으로 찾아와 메르스 검사를 했고, 오후 8시쯤 메르스 1차 양성 판정을 받아 자가용으로 격리 병상으로 이동해 입원했다고 한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엄격한 자가 격리를 했다”며 “31일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는 집사람 외에는 밀접 접촉한 사람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또 본인의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깨달은 31일 아침 회진 때부터 이미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A씨는 박 시장 측의 발표에 대해 “한순간에 전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개념 없는 사람’이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그러면서 “대한민국 의사로서 양심을 걸고, 박원순 시장이나 서울시가 주장한 그런 개념 없는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 시장이) 기자회견 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전화 한 통 없었고, 사전 통보도 받지 못했다”면서 “박원순 시장, 이번에는 틀렸다.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고 프레시안은 전했다.
앞서 전날 박 시장은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서울 소재 메르스 환자의 사안이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관련 사실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보건 담당 공무원이 이날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이 의사의 동선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는 이 같은 엄중한 사실에 대해 복지부로부터 미리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울에 메르스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전파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해 복지부에 관련 사실 공개를 요구했지만 복지부가 이를 거부해 서울시가 직접 나서게 됐다는 것이 서울시 측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관련 사실을 파악한 후 복지부 담당 국장에게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담당 주무관들에게 조속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관계 공무원은 정확한 정보가 없고, 재건축조합 총회 1565명 참석자 명단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 아울러 복지부에서는 총회 참석자들을 수동 감시하겠다는 의견을 보내오기도 했다.
수동 감시 수준의 미온적 조치로는 시민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참석자 명단을 입수했다. 이어 참석자 명단을 바로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했고 해당 자료에 대한 적극적인 공개를 요구했으나 다시 거부당했다. 이에 서울시는 긴급 대책회의를 거쳐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의사가 다녀온 재건축조합 총회 참석자 1565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메르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복지부에 계속 관련 사실 공개와 격리 등 후속 조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35번 환자를 포함해 서울시가 충분한 정보공유를 받지 못했다”며 “대책에 대해서도 동선과 감염성 있는 그룹을 공개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앞으로 복지부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해나가겠지만 복지부가 계속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나온다면 별도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