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영화 ‘연평해전’은 당초 이달 10일 개봉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난주 갑자기 24일로 개봉을 연기했다. 이례적으로 개봉을 2주나 미룬 것을 두고 투자배급사 뉴(NEW)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이유로 꼽았다.
뉴 측은 “최근 메르스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관객들의 성원으로 만들어진 ‘연평해전’ 개봉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며 “또한 무려 7년간 영화의 완성을 위해 힘을 모아준 많은 관계자들의 애정 어린 우려가 이어지고 있어 부득이하게 개봉일을 잠정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뉴 측 설명은 일단 맞다. 현재 메르스 사태는 보건 당국의 무책임한 초기 대응으로 사망자와 확진자가 속출하는 등 겉잡을 수 없이 확산 중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행된 ‘연평해전’ 프로모션을 살펴보면 뉴 측이 메르스를 개봉 연기 이유로 내세운 것은 다소 뻔뻔해 보인다.
우선 개봉을 연기하려면 진작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난달 20일 이후에도 ‘연평해전’은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예비 관객들의 기대가 너무 높아 개봉일을 하루 앞당기게 됐다는 28일 보도자료가 백미였다. 제작보고회와 언론·유가족 시사회가 숨가쁘게 진행된 이달 1일에는 메르스 첫 사망자가 나왔다. 메르스가 급속도로 확산됐는데도 감독·주연 인터뷰 일정은 예정대로 소화했다. 개봉 연기라면서 8일 해군·VIP 시사회는 취소했지만 일반 시사회는 예정대로 진행한다. 이쯤 되면 정말 메르스 때문에 개봉을 연기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메르스 사태가 실시간으로 급변하면서 개봉 연기에 대한 논의 과정이 소요됐을 수 있다. 머리를 싸매 개봉 날짜를 잡았는데 개봉 연기 결정이 쉬울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미 개봉한 ‘무뢰한’ ‘은밀한 유혹’이나 개봉을 앞둔 ‘쥬라기 월드’ ‘극비수사’ ‘경성학교’, 정상영업 중인 극장체인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와 비교하면 ‘연평해전’은 메르스 뒤로 숨어도 너무 과도하게 숨은 모습이다. 메르스로 인해 개봉을 연기한 영화도 뉴가 투자배급한 영화 두 편 뿐이다.
이 때문에 영화계 일각에선 ‘연평해전’이 개봉을 연기한 다른 이유가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우선 수익 때문이다. ‘연평해전’은 제작 초기와 달리 총제작비가 100억원에 육박하는 상업영화가 됐다. 당연히 손익분기점이 있고 흥행이 돼야 한다. 하지만 10일 개봉은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6일 전국 극장 관객은 68만7872명으로 지난달 30일(85만1251명)에 비해 19.2% 감소했다. 메르스 공포 때문이다. 여기에 3일 개봉한 ‘샌 안드레아스’가 먼저 치고 나간 사이 ‘연평해전’은 ‘매드맥스4’ ‘스파이’에도 예매율이 밀렸다. 시사회 직후 평가도 크게 엇갈렸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감동을 주는 ‘연평해전’ 메시지가 현 시국과 맞지 않아 역풍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정부는 그야말로 메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일 당국을 질타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애국심 카드가 먹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명량’ ‘국제시장’에서 마르고 닳은 주제이기도 했다.
연기한 개봉일이 왜 하필 24일인지도 관심거리다. ‘연평해전’ 입장에선 6·25 한국전쟁일과 제2연평해전 13주년인 29일을 뒤에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 호재다. 하지만 ‘극비수사’(쇼박스) ‘경성학교’(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투자배급사를 피하고 ‘소수의견’(시네마서비스)을 택한 것은 ‘제살 깎아먹기’로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에 민폐를 끼쳤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예 용산 참사를 모티프로 삼은 법정 영화인 ‘소수의견’과 맞붙어 보혁 논쟁을 통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연평해전’에서 유가족들이 장례식장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는 뉴스를 지켜보는 장면은 개봉하기 전부터 논쟁이 한창이다. 주연 김무열은 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에는 없었다”고 밝힌 반면 김학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인 해석이나 의도를 갖고 이 영화를 접근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연평해전’은 기획부터 제작까지 말이 많았다. 투자배급사를 찾지 못해 표류하던 중 참여한 CJ나 상장을 앞두고 참여한 뉴를 두고 ‘정권 눈치 보기’라는 풍문이 떠돌아 다녔다. 메르스라는 돌발변수로 개봉날까지 바뀐 이 영화가 무수한 말들 속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