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춘천A병원→보건소→서울B병원→춘천 자택→강릉의료원→서울 보라매병원’총 이동거리 600km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부인의 간병을 위해 삼성서울병원에 방문했다가 메르스에 감염돼 20일 간의 사투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운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병원장 윤강섭 서울의대 교수) 음압병실에서 치료 중이던 소위 '600km 메르스 환자'로 알려진 50대의 환자 A씨가 20일간의 사투 끝에 완쾌되어 오늘 퇴원한다고 밝혔다.
평소 건강하던 A씨는 부인의 간병을 위해 삼성서울병원에 방문하였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하지만 메르스 감염 증상의 발현 후 환자 A씨가 겪었던 여정은 우리나라 공중보건체계의 열악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A씨는 지난달 11일 춘천의 자택에서 자가격리 중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스스로 춘천의 모대학병원을 찾았다. 그 곳은 국가치료병원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격리시설이 없어 임시 대기소에 머문 후 보건소 차량을 이용해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역시 격리병실이 없어 증상이 있음에도 다시 춘천 자택에 자가격리 상태로 있어야 했다.
다음날 자가 격리 상태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후 급히 영동지역에 있는 강릉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미 환자의 상태는 악화되었고 강릉의료원은 우리나라의 보통의 의료원과 마찬가지로 중환자를 치료할 시설과 전문 의료진이 없었다. 13일 자정을 넘겨서야 수소문 끝에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라매병원의 음압격리병실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이 환자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착 당시 환자 상태는 매우 위중하여 도착하자마자 준비하고 있던 마취통증의학과 팀에 의해 신속히 기도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하지만 폐로 들어가는 산소의 농도를 100%를 주입해도(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 중 산소는 21%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산소포화도를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폐기능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도착 당시 당직을 서면서 환자를 진료했던 감염내과 방지환 교수는“15분만 병원에 늦게 도착했어도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틀간의 100% 산소흡입에도 호전이 없자 의료진은 에크모(ECMO, 일시적으로 폐의 산소교환기능을 대신하는 기계) 장치까지 삽입 후 최선의 유지요법을 진행했다. 환자가 너무 불안정했던 탓에 에크모 시술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보호자가 가망 없는 환자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냐며 망설이기도 했다.
인공호흡기, 에크모 기계를 비롯하여 심장초음파기, 각종 주사제 투여기 등이 투입되어 평소 4인실로 사용했던 음압병실이 의료기기로 가득 찼다. 이 환자의 진료를 위해 다른 중환자실의 병상 일부를 폐쇄하고 중환자 경력 간호사 2개 조를 투입하였다. 기본진료는 감염내과 교수, 인공호흡기의 관리 및 폐기능의 보존을 위해서 호흡기내과 교수가, 에크모 장치의 시술 및 유지를 위해서는 흉부외과 교수를 비롯한 에크모 전담팀이 투입되었다. 한 명의 중환자를 위해서 4-5명의 교수와 2개조의 중환자 전담 간호사, 그 외 다수의 전공의와 간호사 등의 의료인력이 밤낮으로 가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환자 진료에 참여했다.
20일 동안의 의료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험난한 과정을 끝내고 환자는 회복하여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박상원 교수(감염관리실장)는“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우리나라 공중보건체계가 만약 똑같은 환자가 다시 발생한다면 역학적인 조치는 물론 치료를 위해서 신속히 보라매병원과 같은 전문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신종감염병 및 중환자진료는 건물과 사람 몇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유능한 팀이 사전에 만들어지고 훈련되어야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했다.
윤강섭 보라매병원장은 “이번 경우는 환자 한명을 살리기 위해 병원의 많은 인적, 물적 자원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사명감이 투입되었지만 일상의 진료에서 이 정도의 자원을 투입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안타깝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 공중보건체계 및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차례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vitamin@kuki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