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 늑장 대응에도 여의도성모병원 초기 메르스 확산 막아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해, 질병관리본부에 전화를 걸었는데 돌아온 답변은 ‘확진 가능성은 0%’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병원은 환자를 즉시 1인실로 옮겼어요. 그때 보건당국 말만 믿었다면, 제2의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송석환 여의도성모병원장을 만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내원했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들었다. 그는 여의도성모의 병원장이자, 정형외과 교수다. 이제 막 수술을 마치고 온 그는 조금은 지친 기색이 있었지만, 그래도 병원의 메르스 대처 상황에 대해 차분하게 술회했다.
송 병원장은 “병원에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고 연락을 했어도 보건당국은 메르스 발생 초기부터 구체적인 병원명 정보를 의료진에게 알리지 않고 늑장대응을 했다. 이러한 무사안일주의가 병원 감염 확산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삽시간에 퍼진 ‘메르스 발생 병원’이라는 오명을 쓴 ‘첫’ 피해병원이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다녀간 병원인 것은 맞지만, 발생지는 아니었다. 당시 그 환자는 메르스 발원지로 알려진 평택성모병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온 환자였다. 하지만 이 병원은 감염내과 교수의 현명한 판단으로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병원의 빠른 조기대응이 없었다면 이 병원 역시 제2의 삼성서울병원이 됐을 수도 있었다. 보건당국의 뒤늦은 대처, 비밀주의식 대처는 병원 내 감염 확산의 주범이 되었다. 그에게 메르스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기로 했다. 또한 메르스 발생 전과 후 병원 피해상황, 보상방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메르스 첫 확진 환자(6번째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상황이 어땠나.
“당시 환자 A씨가 26일 저녁 7시 30분경, 고열 등의 증상이 있어 서울아산병원을 경유하고 우리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당시 폐렴 증상이 심하고 기침을 했다. 당시 감염내과 최수미 교수가 회진을 돌며 환자를 관찰하던 중 ‘메르스가 의심된다’는 판단을 내렸고, 질병관리본부(질본) 역학조사관에 즉시 연락을 취했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고 질병관리본부에 검사 의뢰차 연락을 했는데, 질병관리본부는 어떻게 대처했나.
“한마디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답변 뿐이었다. 당시 우리병원은 메르스 의심환자이니 즉각 메르스 검사를 받아야 하니, 빨리 검체를 확인해달라고 질본에 알렸다. 그런데 역학조사관은 ‘메르스 가능성은 0%’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병원 의료진은 환자 증세가 메르스와 유사해 즉각 1인실 집중치료시설에 환자를 입원시켰다. 결국 질본 역학조사관 3명이 한참이 지난 저녁에나 와서야 환자의 검체를 회수해갔다. 분명 질본에서 즉각 대처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다. 결국 환자는 질본으로부터 확진판정을 받고 28일 우리병원에서 국가지정격리병상이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으로 격리 입원됐다. 당시 최 교수는 질본이 확진 가능성을 전혀 염두하지 않은 질본의 태도에 황당해 했다. 감염내과 전문의가 메르스 가능성을 적극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와서 검체를 회수해 간 보건당국의 안일한 태도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보건당국이 메르스 환자가 어느 병원에서 옮겨 온 환자인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나.
“그렇다. 병원명도 일체 공개하지 않아 환자에만 의지했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우리병원 감염관리실과 의료진은 질본에 ‘혹시 이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온 환자가 맞냐?’고 감염경로를 묻기 위해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정부 방침 상, 병원명은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게다가 평택성모병원을 거쳐 간 환자 목록을 묻자 ‘비밀’을 고수하며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 병원 의료진 자체 판단하에 1인실로 환자를 옮기지만 않았어도 우리도 제2의 평택성모, 삼성서울병원처럼 됐을 수도 있다. 그런 사이에 SNS를 통해 우리 병원이 메르스 발생 병원이라는 오명을 쓰고, 병원 환자가 50% 이상 줄게 됐다. 대처를 잘했는데 피해만 커졌다.”
-이후 또 다시 정부가 ‘88번’ 환자가 감염된 곳이 ‘여의도성모병원’이라며 ‘병원 감염’으로 치부했는데, 가장 억울한 점은 무엇이었나.
“우리병원에서 처음 확진 판정을 받았던 6번 환자의 사위인 88번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정부가 감염된 곳은 여의도성모병원이라며, 정부가 병원 감염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하지만 메르스 확진자 중에는 가족 내 감염 환자가 더 많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감염됐다고 해서 병원 내 감염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가까이에서 접촉한 것이 더욱 더 큰 문제다. 당시 병원 내 감염 외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정부는 고려하지 않고 병원 감염만 강조한 것은 문제가 있다. 병원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의료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료현장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병원들이 감염의 온상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정부가 해명을 해야 한다.”
-정부에서 메르스 피해 병원 보상안을 내놓고 있다. 보상안이 합당하다고 보는가.
“택도 없다고 본다. 현재 정부가 메르스 직접 피해 병원, 폐쇄된 병원 등에만 보상을 해준다고 했다. 그러면 메르스 환자로 의심되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투를 벌였던 병원들은 ‘직접 피해’ 병원이 아닌가. 기준이 모호하다. 정부의 허술한 감염병 관리체계로 인한 책임을 민간병원이 다 떠안았다. 그런데 직접 피해 병원이 아니면 병원 당 3억원 가량을 이자 1%로 빌려주고 지원한다는 것인데 이는 25만원의 혜택에 불과하다. 메르스 사태로 병원 환자가 50% 이상이 줄었는데, 그 사태에 대한 피해는 병원이 보고, 지원도 안해준다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모든 병원에 보상을 해준다면, 정부 재정 손실도 커질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
“메르스 사태를 해결해 온 중심에는 민간병원이 있다. 의료기관당연지정제(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를 의무적으로 진료토록 한 제도)가 도입된 이후, 민간병원은 병원에 오는 모든 환자를 거부하지 말야아 할 의무가 있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와도 병원은 성심성의껏 진료를 해 왔다. 그러니까 모든 병원은 직접 피해 병원인 것이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모든 의료기관 수입이 감소한 이유는 ‘메르스’ 때문이다. 건강보험재정이 12조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최근 메르스 사태로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들이 많아지며, 병원에 지급할 액수가 줄어들며 건보의 흑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정부가 건보재정 흑자를 이런 위기 때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피해병원에 저금리 대출을 해줄 게 아니라 직접적 재정지원을 해 줘야 한다. 그런다고 해도 정부 예산이 대폭 줄어들지 않는다. 병원은 메르스 환자가 직접 사투를 벌이는 직접 피해자들이다. 그러니 직접 피해 병원이라는 모호한 규정을 둘 것이 아니라 좀 더 피해 범위를 확대해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병원 감염은 여전히 문제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은.
“우선 병원 내 다인실 병상을 줄여 나가야 한다. 우리 병원도 6인실을 많이 줄여왔다. 감염병 위험이 많은 곳이 결국 다인실과 응급 환자가 많이 다녀가는 응급실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1인실과 2인실 위주로 병상이 구성돼 있다. 정부에서도 감염병 대응을 위해 다인실보다 1~2실을 확충할 수 있는 공간과 재정 지원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는 감염병 확산이 되고서야 뒤늦게 기침을 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이나 손씻기 등의 보건 교육을 시킨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건의료와 관련한 교육이 부족하다.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어릴 때부터 ‘안전’이나 ‘건강이나 의학상식’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을 전국민이 할 수 있도록 배우게 해야 하고, 기침을 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 등에 대해 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밖에도 정부 차원에서 보건이나 안전과 관련된 대국민 홍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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