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사도’는 지독한 멜로드라마예요.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사랑이 있죠. 영원한 인류의 화두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송강호는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를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변호인’ 이후 2년이 후딱 가더라”라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송강호는 “썩 재미난 활극 오락물은 아니지만 진중한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작품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사도’는 사도세자가 8일간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사극이라면 도가 튼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자연스레 과장되고 다이내믹한 이야기가 연상되지만 ‘사도’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잔잔한 이야기다. 송강호가 연기한 영조 캐릭터는 현대어와 사극 말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다룬 만큼 몰입도가 낮아지지 않겠냐는 우려에 송강호는 “일부러 캐릭터를 과장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사료를 보면 영조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친근한 말투를 구사해요. 예를 들면 극 중에서 사도에게 영조가 묻습니다. ‘너 1년에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드니?’ 사도는 대답하죠. ‘1년에 한두 번 쯤 듭니다.’ ‘솔직해서 좋다.’ 솔직한 두 사람의 대화에 그 자리에 있던 사도의 스승이 당황한 것까지 그대로 실록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사극을 통해 왕에 대한 고정관념을 쌓아왔지만 사실은 왕도 인간인 거죠.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것뿐 아니라 아들하고 장난도 치고, 신하들에게 욕설도 합니다. 왕은 이럴 것이라는 무언의 편견을 깨고 정말 있는 그대로 왕을 연기한 것은 아마 ‘사도’가 최초일 겁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영조는 실제로 보는 사람을 엄청나게 몰입시킨다. 대리청정을 하며 세자에게 어제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늘은 호통을 치고 마음에 안 들어 하다 못해 대님 하나까지 트집을 잡는 모습은 얄밉기까지 하다. 과한 조기교육을 시키고 아이에게 기대를 하다 마음대로 안 되니 트집을 잡는 모습은 왕 치고는 너무 쪼잔하거나 얄팍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송강호는 “사실 저도 이준익 감독과 대리청정 부분에서 가장 많이 부딪혔다”고 웃었다. “‘또라이도 아니고’ 라고 말할 정도로 너무하다 싶었죠. 어젠 좋다고 웃더니 오늘은 아들이 싫은 소리 좀 했다고 혹독하게 몰아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보다 보니 점점 이 사람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 당시는 당파싸움 때문에 왕도 마음만 먹으면 죽이던 시절인데 영조는 정통성을 끊임없이 의심받아 온 사람입니다. 고통 속에서 왕좌를 지켜왔기 때문에 자기 자식만큼은 확고하고 자유롭게, 누구에게나 다 추앙받는 군주가 되길 원했던 아비인 거죠.”
1960년대의 부모님 세대가 송강호 자신에게 가르쳐왔던 것들은 21세기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하물며 250년 전, 그것도 왕이라는 사람의 교육관을 현대의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어려울 만도 하다는 것이 송강호의 설명이다.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을 다루기에 사도의 비행을 다 소화하지 않았다. “궁인을 100명을 넘게 죽인 사람이 사도세자인데, 그걸 다 다루면 관객들 다 영조 편 듭니다”라는 농담이 우습지만은 않은 이유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송강호는 ‘잔인하게 보이지만 영조대왕도 결국은 아버지’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모든 일이 지독한 부성애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사도’를 보다 보면 그 어떤 사랑이야기보다 지독한 멜로가 펼쳐진다. 곱씹을수록 새로운 맛이 펼쳐지는 영화라며 송강호는 “적어도 두 번은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와 영조대왕의 공통점이요? 자식과의 소통의 부재죠. 하하. 집에 가도 아들하고 대단한 얘기는 안 합니다. 딸도 그렇고.”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눈빛에서는 자식들을 향한 애정이 엿보이는 송강호다.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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