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의 문화토크] 영화 ‘도리화가’는 무언가 만족스럽고, 무언가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금기를 깨는 자는 목숨이 위태로운 혼돈의 조선 말기에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이야기는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기획이라 더욱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이쯤되면 무언가 나오겠지, 나오겠지”하는 설레임을 충족시켜주는 씬은 없었다.
수지, 류승룡, 송새벽 등 후기시대의 소리꾼으로 변모하기 위해 고생한 흔적은 엿보이나, 특히 수지의 영화 속 판소리 실력은 서편제의 오정해와 비교하기엔, 많이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스타마케팅이 중요하지만, 극 중 등장인물이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관객들은 등을 돌리게 마련이다.
문화콘텐츠의 아이템이 적고 영화적으로 볼거리가 없었던 22년 전 ‘서편제’ 개봉 당시와, 콘텐츠와 스토리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 상황에는 관객이 받아들이는 판소리 영화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또한 관객들도 꼭 우리의 문화이니 애국심을 갖고 봐야지라는 인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서편제’는 1940년대부터 60년 초에 이르기까지 소리꾼 집안의 비극적 연대기를 통해 전통문화인 판소리의 가치와 우리의 정서를 영화예술로 꽃피워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와 더불어, ‘도리화가’는 조선 후기인 1867년, 남자만이 소리를 할 수 있었던 당시의 금기를 깨고 최초의 여류 소리꾼이 된 진채선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대를 향한 용기 있는 저항과 도전의 스토리에 대해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도리화가’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융복합적 콘텐츠의 부족이라 볼 수 있다. 지금 관객들은 드라마에서도 공포를, 로맨스에서도 코미디를, 스릴러에서도 휴머니즘과 공감가는 웃음을 기대한다. 2시간 가까이 무거운 흐름으로 뻔히 기대되는 플롯과 함께 한 여자와 남자의 성공기를 보기에는 관객들이 지루해한다. 그 안에는 여주인공의 사랑도 있어야 되고, 배신도 있어야 되며, 현실 안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적갈등과 외적갈등이 존재해야 한다. 더구나 영화 속에서 보여졌던 수지의 판소리 실력은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물론, ‘도리화가’가 새로운 시도와 시대적 배경을 잘 전달해 준 것은 틀림없다. 그 시대의 애절한 미학과 젠더 자체가 불공평한 시대적 어려움을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기 전에도 예상했던 플롯과 스킬 부족, 반전과 웃음의 부족은 결국 흥행실패라는 악재로 이어졌다.
스토리 초반에 진채선의 포지션도 문제였다. 부모를 여의고 미칠 듯이 사랑한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역경을 딛고 거리에 내몰린 진채선의 이야기가 초반부에 거세게 나와야만 했다.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를 기웃거리며 마냥 호기심과 천진난만한 소녀의 이미지에 너무 많은 씬을 쏟아 붓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투자배급사들도 많은 연극영화과 출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점을 감안해, 스타마케팅에만 의존하지 말고 보다 효율적으로 신인배우 캐스팅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각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진솔한 친구들이 모여 개인의 장기를 발굴하고 다듬어 작품 속에 다양한 캐릭터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이를 통해 마케팅의 주체인 관객들은 마음을 움직이고 전파시켜 나감과 동시에 배우들과 쌍방향 호흡을 할 것이다.
이호규 남예종 연기예술학과 교수.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