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롭게도 이번 여행기의 첫 여행지가 프랑스 파리입니다. 이번 테러로 희생된 분들과 가족 분들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하루 빨리 평화롭고 여유로웠던 파리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관광지나 박물관, 미술관은 추천 코스에 꼭 있죠. 안 가기엔 왠지 찜찜해서 가보면 막상 ‘별 거 없네~’ 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 건너뛰게 되는데요. 파리만큼은 다른 일정을 빼서라도 꼭 가보겠다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고속버스 안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평생 교직생활에 계셨던 그 분은 정년보다 일찍 명예퇴직을 하시고 세계 곳곳을 다니고 계셨지요. 몇 달 뒤에도 파리로 여행을, 아니 한 달 동안 파리에 살러(?) 간다 하시더군요. 파리 관광지는 이미 몇 차례 방문으로 섭렵했는데 그 어느 때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다며, 파리에 살면서 느긋하게 돌아볼 계획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도착하고 떠나는 날을 빼면 딱 3일뿐인 빡빡한 일정이지만 심사 숙고해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을 선택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BC 4000년 전 이집트 유물 5만여 점 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유물, 1848년까지의 회화?조각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규모로 보나 컬렉션의 다양성으로 보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요새였다가 궁전으로 바뀌었고, 그 후 1793년 8월에 박물관으로 재탄생합니다.
‘ㄷ’자로 연결된 3개의 큰 건물에 3~4층에 걸쳐 구석 구석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감상은커녕 속보로 작품 앞을 지나쳐 가도 하루가 꼬박 걸리는 규모입니다. 제대로 보려면 1주일 이상이 걸린다고 하니 애초에 다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꼭 보고 싶었던, 혹은 아주 유명한 작품들을 골라 보는 편이 낫습니다. 한국어로 된 안내도를 보면서 보물찾기 하듯 원하는 작품을 찾아 다니다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밀로의 비너스상’처럼 교과서에서 자주 봤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이 주는 감동의 차이는 꼭 한번 직접 느껴볼 만 합니다. 그 밖에도 미켈란젤로, 앵그르,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보다 규모는 작지만 알찬 미술관입니다. 체력이 약하거나 어마어마한 인파를 헤칠 자신이 없다면 루브르 대신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는 것이 낫습니다. 고전적인 작품보다 눈에 익숙한 작품을 선호한다면 이 역시 오르세 미술관이 적격입니다. 보통 1848년 이전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1848~1914년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에, 1914년 이후의 작품은 퐁피두 센터에 나눠 전시하기 때문입니다.
오르세 미술관 안은 둥글고 높은 유리 천장과 한 쪽 벽의 거대한 시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이 예전에는 기차역이었기 때문입니다. 1900년에 지어진 기차역이자 호텔이었던 이 곳은 승강장 길이가 짧아 차량이 길지 않은 근거리 기차역으로 이용되다가 이용객이 줄면서 1939년 폐역이 됐습니다. 그나마 호텔이 1973년까지 운영되었지만 그 후로는 8년의 리모델링을 거쳐 미술관으로 다시 개장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드바르트 뭉크와 같은 해외 인상파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으며 장 프랑수아 밀레, 모네, 마네, 폴 세잔느, 오귀스트 르느와르 등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오랑주리 미술관을 추가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모네의 대작인 수련(Water Lilies)을 비롯해 1층을 모네 작품으로 꾸며놓아 모네 전문 미술관으로도 불립니다.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라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여하는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닌텐도)를 빌리자. 작품 설명뿐 아니라 현재 위치에서 내가 원하는 작품까지 가는 길도 안내한다. 오르세 미술관을 둘러보다 지쳤다면 당장 미술관 안 레스토랑으로 향하자! 호텔이었던 과거와 어울리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음식 가격도 비싸지 않은 편이지만 주머니가 가볍다면 저렴한 커피 한잔을 즐기는 것도 좋다. 커피로 카페인을 충전하면 다시 나머지 작품들을 볼 힘이 불끈 솟는다. 단, 영어로 ‘coffee please’라고 주문하면 에스프레소가 나온다는 점! 아메리카노는 카페 알롱제(Cafe Allonge)라고 한다.
글·사진 | 이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