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처음 방문하는 도시, 그것도 짧은 일정이라면 유명 관광지 위주로 점 찍기 관광을 하기 쉽습니다. “파리까지 가서 거길 안 갔단 말야?” 나중에 이런 소릴 들으면 후회막급일 테니까요. 언제 또 올지도 모르고 ‘부지런을 떨어서라도 하나라도 더 보고 말 테다!’ 하는 욕심은 누구나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유여행이라 내 맘대로 일정을 짤 수 있다지만 유명 관광지를 찍고 다니다 보면 약간 회의감이 밀려오는 때가 옵니다. 감상할 시간도 넉넉지 않은 탓이겠지만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물론 쫓기듯 일정을 소화하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 몸이 피곤해져서 풍부한 감정으로 순간을 즐기기 어렵기도 하고요.
파리가 처음이었던 저희도 마찬가지였어요. 파리에서 허락된 시간은 단 3일. 꼬박 1주일을 보내도 모자랄 만큼 볼거리가 많은 파리에서 3일은 정말 짧게 느껴졌는데 그 덕에 몸살이 날 만큼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게 됐지요. 그런데 순간 ‘지도에 스탬프 받아 방학숙제 내는 초등생도 아니고 내가 뭐하는 거지? 패키지도 아니고…’ 하고 허탈감이 훅 밀려올 때가 오더라고요.
그럴 때는 무작정 버스를 탔어요. 전철로 가면 목적지 분명하고 길 잃을 걱정도 없지만 이동이 목적일 뿐 다른걸 보기 힘들지만, 버스는 지나며 마주치는 가게며 지나는 사람들 모습만으로도 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다른 시간이 되어 주었거든요. 한 번은 버스가 다니기에 비좁다고 느낄 만큼 좁은 일방통행로를 지난 적이 있어요. 예전부터 서민들이 살던 동네인지 좁은 길만큼이나 집들이 다닥다닥 붙여 있었죠. 유명 건물뿐 아니라 일반 주택들 조차도 개조가 쉽지 않은 파리의 정책 탓에 옛 건물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골목은 버스로 지나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운 관광지(?)였지요.
그런데 버스가 달리다 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거에요. 앞쪽을 보니 청소차 한 대가 쓰레기통이 있는 곳마다 차를 세워 쓰레기를 수거 하고 있었어요. 오후 5시도 안된 시각이면 한창 차가 다닐 시간인데, 게다가 일방통행이라 청소차를 추월할 수도 없고 말이죠. 이른 새벽에 쓰레기를 싹 치우는 서울의 시민 머릿속에는 ‘도대체 왜 차량흐름을 방해하면서 까지 지금?’ 이런 생각이 가득 했죠. 그 순간 찌릿 번개가 치듯 귓가를 울리는 마음의 소리 ‘여기는 파리니까!’
그리고는 버스 안을 살폈어요. ‘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어쩌면 여기 청소원 출퇴근 시간은 다른 사람과 같을 지도 몰라. 어쩌면 이 길의 쓰레기통을 다 비우고 나면 그들도 퇴근을 해서 가족과 저녁식사를 즐길 수도 있겠지.’ 방해되지 않는 시간에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했듯이, 파리는 청소부도 똑 같은 시간에 일하고 퇴근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뭐든지 나의 편의와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내 안의 감춰진 이기주의를 발견한 거죠. 청소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평소에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이런 게 여행이 주는 선물 아닐까 싶었어요.
파리를 여행 하다 보면 또 하나 뜻밖의 선물을 만납니다. 바로 버스킹이에요. 버스킹(busking)은 ‘busk’는 ‘길거리에서 연주하다’는 동사이지만 어원은 '찾다’, ‘구하다'라는 뜻의 스페인어 부스카르(buscar)라고 해요. 아일랜드 더블린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파리에요. 한 번은 메트로 안에서 울리는 생생한 클래식 소리에 놀라 따라가보니 세상에! 실제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있더라고요. 연주자들은 청바지에 면 티셔츠를 입은 편한 차림이었지만 연주만큼은 공연장 저리 가라 할 정도라서 깜짝 놀랐어요. 파리의 메트로에서 연주를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해요. 일년에 두 번씩 오디션을 봐서 ‘메트로 예술가’로 인정을 받아야 공연을 할 수 있는 거죠.
한국은 기타나 키보드를 사용한 버스킹이 많은데 파리에선 악기의 다양성에 또 한 번 놀래요. 몽마르뜨 언덕에서 파리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는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하프를 연주 하고 계셨고, 사크레쾨르 대성당 뒤에서는 실제로 보기 힘든 행드럼(hangdrum) 연주도 들을 수 있었어요. 또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입장 줄에 서있으면서도 전혀 지겹지 않았던 건 신나는 재즈 밴드의 음악 때문이었죠.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다 보면 피로도 확 풀리고 메말랐던 감정도 순식간에 100% 충전 완료! 오페라 앞에서 귀를 고문(?)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겉으로 티 안 나게 웃으려고 애썼던 추억도 파리가 선사한 선물같이 느껴지네요.
Tip. 거리공연, 어디서 많이 할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들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몽마르뜨 언덕, 콩코드 광장, 퐁피두 문화예술센터, 오페라 하우스 앞,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공연이 자주 열리고 메트로(지하철)는 주로 환승역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때로는 메트로 안까지 직접 찾아와(?)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다.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RER B선 안에서도 기차 안을 돌며 공연을 하는 집시 밴드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은 본인의 앨범CD를 팔기 때문에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 현장에서 구입해 보는 것도 괜찮은 기념품.
글·사진 | 이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