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조선 중·후기 역사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7년 동안 지속된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 꿇은 임금, 붕당의 대립과 세도정치 등 조선 중·후기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역사관을 형성하는 현실에서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역사 인식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역사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는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허구의 이야기다. 역사에서 모티브가 촉발된 것은 맞지만, 그 내용까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드는 또 다른 근거는 멀쩡했던 정조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실록에는 정조가 죽기 24일 전에야 발병 기록이 나타나지요. 이 사실만을 놓고 본다면 정조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2009년 2월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들이 발견되면서 독살설은 완전히 힘을 잃습니다. 어찰 여러 곳에서 정조가 자신의 병증을 호소하는 내용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정조는 죽기 1년 전의 편지에서 “나는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상승하여 등이 뜸을 뜨는 듯 뜨거우며, 눈은 횃불같이 시뻘겋고 숨을 가쁘게 쉴 뿐이다. 시력은 현기증이 심하여 역시 책상에서 힘을 쏟을 수 없으니 더욱 고통을 참지 못하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이 논의는 ‘벽파가 왜 정조를 독살하려 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임금을 독살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혹여나 발각되면 자신은 물론 가족, 심지어 당파 전체가 몰살당할 수 있습니다. 벽파는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을까요?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벽파가 위기에 빠진 정황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p.234)
저자가 태조부터 순종까지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집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근거 있는 역사관이었다. 저자는 가능한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근거를 마련하고, 그 결과를 가능한 한 쉽게 옮겼다. 무엇보다 과거를 위대한 역사, 혹은 비루한 역사로 쉽게 재단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연구와 비판을 바탕으로 한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문국 지음 / 소라주 /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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