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기록 중 어느 것이 역사로 선택되는가. 이 문제의 답은 늘 정치 공학적으로 풀어졌고, 역사가의 펜 끝에서 완성됐다. 그러나 지금은 특정 계층이 역사가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말하고, 듣고, 기록하고, 전파하는 시대인 것이다. 한 사회가 어떤 기억을 품고 미래로 향할 것인지 결정하는 ‘사회적 기억’은 독자만이 이룩할 수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구술자는 무려 21년 전의 희미한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했다. 구술자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아물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에 아픈 기억을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이들의 청자가 되어주었다.
“남편 동료가 ‘삼풍 무너졌대’ 하는 말에 ‘장난해? 우리 와이프 거기 있는데’ 그랬대요. 휴대 전화 이런 게 없을 때니까 부랴부랴 TV 자막으로 사고 소식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은행 동료들하고 오산당병원, 또 어디 병원,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동료 분들이 제가 있는 병원을 찾아내서, 남편이 왔는데 저희는 온몸에 하얗게 석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죠. (제가 다리가 부러진) 작은애 검사를 쫓아다니느라 병원 측에서 큰애 현정이를 데리고 있었나 봐요. 따로 씻기고 할 여유도 없었어요. 나중에 애 아빠가 와서 큰애 얼굴에 허옇게 석면이 덮여 있으니까 손으로 계속 털어줬대요. 아무리 털어도 안 털어지니까 혀로도 닦아줬다고 하더라고요.” (p.132)세월호 참사와 달리 삼풍백화점 참사의 당사자들 이야기는 한 데 모인 적이 없다. 21년 전 희대의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몰인정한 상식이었다.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서울의 아픔, 삼풍백화점’은 재난의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하는 구술·기록프로젝트다. 5명의 기억수집가가 2014년 10월 7일부터 2015년 7월 30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다. 책에는 59명의 구술이 실렸다.
서울문화재단, 메모리 인 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 동아시아 / 16,000원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