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의 시선] 엑소(EXO)를 보기 위해 24시간 대기… '스타쇼 360' 녹화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새우젓의 시선] 엑소(EXO)를 보기 위해 24시간 대기… '스타쇼 360' 녹화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기사승인 2016-08-25 10:31:36

[쿠키뉴스=인세현 기자]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다’라는 말은 방송국 앞 팬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아이돌 시장은 약 20년간 크게 성장했지만, 그 성장의 중심에 서 있는 팬들에 대한 시선은 ‘맹목적이고 멍청한 어린 여자애들’에서 변화한 것이 없다. 이러한 시선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방송국 앞이다.

이른바 ‘공방’이라고 불리는 공개방송 방청 현장에서 팬들은 철저한 약자가 된다. 팬들은 녹화장에 입장하기 전 한 두 시간, 운이 나쁘다면 기약 없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 중 벌어지는 무례한 일은 부지기수다. 팬들은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나 스타를 보기 위해 불합리하고 불쾌한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다음달 첫 방송을 시작하는 MBC MUSIC ‘스타쇼 360’의 첫 게스트로 그룹 엑소의 멤버 전원이 녹화를 마쳤다. 프로그램의 연출을 담당한 박찬욱 PD는 “최고의 스타가 첫 회에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엑소를 섭외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팬들은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엑소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프로그램 녹화 현장에서 환호는 곧 분노로 변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 엑소를 보기 위한 24시간의 대기, 사건의 재구성

지난 22일 오후 10시경 SM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그룹 엑소(EXO)의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방송 녹화 방청 공지가 올라왔다. 23일 오후 8시부터 24일 오전 1시까지 엑소가 출연하는 MBC MUSIC ‘스타쇼 360’을 방청할 500명을 모집하니 방청을 원하는 팬은 지정된 장소에 23일 오후 5시30분까지 모이라는 것.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입장 순서가 정해지며 녹화 시간과 입장 인원은 유동적일 수 있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엑소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 그룹이며 멤버 모두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5시간의 녹화라면 꽤 긴 시간 엑소를 볼 수 있는 기회다. 공지를 확인한 팬들은 서둘러 지정된 장소로 출발했다. 이미 23일 0시경에 500명이 넘는 인원이 지정된 장소에 모였다. 팬들은 밤을 새우며 대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후 8시에 시작한다던 녹화는 하염없이 늦어졌다. 팬들은 오후 10시가 돼서야 실내로 들어갈 수 있었고 오후 11시30분쯤 녹화장에 입장했다. 최초 대기시간으로부터 약 24시간, 공지에 나와 있던 모집시간으로부터 약 6시간이 지나서다. 녹화는 약 1시간가량 이어져 24일 오전 1시에 끝났다.

이날 팬들에게 녹화 지연 사유와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팬들은 대기 과정에서 상황 설명이나 안내를 듣는 대신 경호원에게 ‘한심하다’는 류의 폭언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온라인을 통해 ‘스타쇼 360’ 측에 항의했다.

 

▲ 방송국의 사정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 ‘스타쇼 360’ 측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타쇼 360’의 관계자는 “녹화가 현장 사정상 늦어진 것이 맞다”고 지연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당일 현장 진행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오후 8시부터 녹화를 시작한다는 공지는 제작진이 아닌 SM엔터테인먼트가 작성해 게재한 것이며, 그 공지에 녹화 시간은 당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고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팬들이 주장하는 현장 경호원의 폭언 사실도 부정했다. 방청객 대기 중 엑소 일부 멤버가 지나가면서 안전상의 문제가 생겨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약간의 제재를 가한 사실은 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한 적은 전혀 없다는 것.

 

▲ 바뀌지 않는 팬에 대한 인식과 거듭되는 불합리함

방송 녹화 현장은 상황에 따라 변동이 생길 수 있다. 많은 인원의 안전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동 사항을 설명하고 그 상황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나아가 기약 없이 오랜 시간을 바닥에서 대기해야 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 아이돌을 보기 위해 온 ‘어린 여자애들’은 막대해도 된다는 자세가 과연 2016년에 어울릴만한 의식인 걸까.

방청은 방송국의 호의가 아니다. 방송국은 시간당 일정한 보수를 지불하는 방청객을 모집하기도 한다. 방청객이 방송에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돌이 출연하는 방송의 경우 당연히 팬들의 시간과 노동력은 무시된다. ‘스타쇼 360’에 모인 방청객 500명의 임금을 계산하면 약 2588만원 정도다. 이는 공지된 모집시간인 오후 5시30분부터 실제 종료시간인 다음날 오전 1시까지의 시간을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것이다. 

아이돌을 보기 위해 방송국에 온 팬들은 방송용 소품이 아닌 사람이다. 심지어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서 가장 큰 소비자 집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방송국 앞 대기선 앞에서 철저하게 삭제된다.

K팝 시장의 규모는 더 이상 구멍가게 수준이 아니지만, 아이돌 팬에 대한 인식과 행사 진행 과정은 과거 어딘가에서 여전히 대기 중이다. 새우젓을 문화 소비의 주체로 봐달라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일까.

★ ‘새우젓의 시선’ : 자신을 일명 ‘새우젓’이라고 칭하는 팬들의 관점으로 연예 뉴스를 돌아보는 쿠키뉴스의 코너입니다.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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