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각기 다른 음색을 가진 수많은 악기들이 함께 모여 지휘자의 손길에 따라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때처럼 멋진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악기라고 해도 연주자들이 저마다 각자의 소리를 낸다면 도저히 들어줄 수없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게 될 것이다. 서로 화합하지 않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이것을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커피의 세계에도 오케스트라처럼 합주의 세계가 있다. 커피 블랜딩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블랜딩은 커피의 고유영역은 아니다. 오히려 향수나 와인, 위스키가 그 역사가 깊다. 최근에는 ,차와 심지어 최근에는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블랜딩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최초의 블랜딩은 좋은 향미를 얻기 위한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종(Straight)커피의 고유한 맛과 향을 강조하면서도 좀 더 깊고 조화로운 향미를 창조할 수 있다. 단종커피에서는 얻을 수 없는 향이 다양한 커피를 섞어주는 블랜딩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블랜딩의 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커피 블랜딩이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블루마운틴 블랜드라고 할 때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커피가 극히 일부만 포함되어도 그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세계 삼대커피인 블루마운틴의 명성에 기대어 과대포장 하는 좋지 않은 경우다.
심지어 아예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어도 그 맛과 향이 나도록 했다며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정직하지 않은 블랙 마케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것과 같이 커피 블랜딩은 예상보다 훨씬 좋은 향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각각의 싱글 오리진 커피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아로마(Aroma)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커피 블랜딩의 장점이다. 각각의 커피의 아로마들이 서로 합쳐져서 발생하는 시너지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노베이션(innovation), 이 말은 혁신이라고 번역되어서 기존에 있던 기술들이 서로 만나 새로운 기술력으로 탄생할 때에 사용되는 말이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이 말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많이 보이던 것들이 함께 협력했을 때에 나타나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이노베이션이 커피 블랜딩의 가치이다.
아프리카 땅에서 자라 아프리카 농부의 손에서 자라고 수확된 커피에는 아프리카의 향기와 정서가 담겨있고, 아시아, 중남미, 그 어느 곳에서 자랐든 그곳에서 난 농산물은 그 땅의 향기와 농부의 향취를 지니고 있다.
원산지별로 커피는 제각기 자기의 멋진 향기를 뽐낸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커피는 여성적인 커피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과일과 꽃의 향기와 산미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시아 지역,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는 묵직한 바디감과 진한 쵸코렛의 향미가 마치 중후한 남성을 닮았다고 평가한다. 중남미지역의 커피, 특히 허브 향과 너트향이 특징인 브라질커피는 중성적인 커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커피와 블랜딩을 하여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커피들을 서로 섞어 줄 때에 그 블랜딩의 기술력에 따라 정말 향기로운 커피가 재탄생되는 것이다.
최적의 비율로 블랜딩된 커피는 화합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하고 위대한 문명을 꽃피운 민족은 화합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 블랜딩 기술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잘 블랜딩 된 커피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게 하나로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향기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는 순간이 속히 오게 되기를 기대한다.
글=최우성(인덕대 외래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서울 본부장, 웨슬리커피 LAB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