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는 시작부터 칸이 선택한 이유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언뜻 허름한 듯 보이지만 비현실적으로 설계된 비리디안 톤의 배경에서 펼쳐지는 5분간의 1인칭 액션 장면은 마치 FPS 게임을 하는 기분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자칫하면 혼란스럽기만 하고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는 롱테이크 액션은 세련됐으며, 어떤 배경이나 시나리오, 인물 없이도 관객을 순식간에 스크린 속으로 끌어당긴다.
조선족 여인 숙희(김옥빈)는 킬러로 길러진 인물이지만 한 조직을 일망타진한 사건에서 경찰에 사로잡힌다. 여자 홀로 조직 전체를 살해한 사건이다. 누군가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숙희는 국정원에 비밀 스카우트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얼굴도 고치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훈련을 받게 되는 숙희. 그러나 숙희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나고, 숙희는 새 인생을 살기는 커녕 다시 예전의 삶으로 끌려들어간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악녀’의 줄거리는 액션에 비해 산뜻하기까지 하다. 갈등 구조는 명확하고, 해결 방식은 강렬한 액션이 대신한다. 제 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월드 프리미어에서 5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전해져 자연스레 올라간 기대감에 충분히 부응하는 영화다. 정병길 감독은 자신의 전작 ‘우리는 액션배우다’ ‘내가 살인범이다’ 등을 통해 익히 입증된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뮤직비디오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롱테이크 액션 장면은 감각적인 그림과 역동적인 호흡으로 숨을 멎게 한다.
김옥빈의 분투는 상상 이상으로 놀랍다. 살인병기로 길러져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는 킬러 숙희인 만큼 김옥빈은 단검 두 자루부터 권총, 기관총, 망치, 도끼, 장검 등 다양한 무기를 제 몸의 일부처럼 사용한다. 그간 충무로가 남성 위주로 보여줬던 모든 액션을 뛰어 넘는 압도적인 움직임이다. 독하다거나 살벌하다는 말 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액션이기 때문이다. 정병길 감독이 권기덕 감독과 어떤 레퍼런스 없이 새로 디자인해냈다는 김옥빈의 움직임은 관객에게 쾌감을 안기며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전할 것이다. 다음달 8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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