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사람들은 흔히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 ‘영원히 이 시간이 계속된다면 좋겠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막상 아무리 행복한 순간이라도 영원히 반복된다면 아마 누구라도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순간도 아닌 지옥같은 순간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영화 ‘하루’(감독 조선호)는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잃은 아빠와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의 반복되는 하루를 그린다.
세계를 돌며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 준영(김명민)은 막상 뒷전으로 밀려난 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딸의 12번째 생일만은 꼭 함께하기로 한 준영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약속 장소로 향했지만, 그 곳에서 교통사고로 싸늘한 주검이 된 딸 은정(조은형)을 발견한다.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멍해진 준영이지만, 잠시 후 준영은 다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눈을 뜬다. “30분 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에 어리둥절하는 것도 잠깐이다. 준영은 또다시 반복되는 악몽에 소스라친다.
병원의 사설 구급차 운전기사인 민철(변요한) 또한 마찬가지다. 교통사고 무전을 받고 간 현장에서 이미 숨이 끊어진 아내 미경(신혜선)을 발견한 민철은 다음 순간 자신이 교통사고 무전을 받기 전으로 돌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끊임없이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는 하루를 반복하던 민철은 어느 순간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혼자만 매번 다른 행동을 하는 준영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 남자는 만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분투하지만, 처음으로 사고를 막은 날 “내가 죽일 것이다”고 말하는 남자를 맞닥뜨린다.
영화 ‘하루’는 끊임없이 회귀하는 한나절을 그리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세 남자의 사투를 담았다. 크랭크인 당시에는 국내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간 이동 장르로 우려를 낳은 것도 사실. 그러나 그간 다양한 장르물이 박스오피스에 진출한 상황에서 ‘하루’는 관객에게 상당히 익숙한 화법인 가족애로 시간 회귀라는 독특함을 담아낸다. 덕분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세 남자의 회귀에 끌려들어가게 되고, 절로 반복되는 순간에 이입할 수 있다.
회귀가 주제인 만큼 영화의 흥행은 반복되는 시퀀스를 얼마나 다채롭게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9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계속해서 똑같은 장면을 보고 싶어 할 관객은 없기 때문이다. 매번 달라지는 인물들의 행동과 행동에서 비롯된 사건 전개는 관객에게 상당한 흥미를 부여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존재한다. 이를 적게나마 해소할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90분 내내 질주하는 김명민과 변요한은 계속해서 바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연기를 펼쳐낸다. 오는 15일 개봉. 15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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