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혁명인가, 독과점 재생산인가.”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를 둘러싸고 나오는 목소리들은 여러 가지다. OTT 서비스 배급업체인 넷플릭스가 제작·투자한 영화 ‘옥자’의 국내 상영 논란이 커지면서다. ‘옥자’는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크게 이름을 알렸고 관객들의 궁금증도 자아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바로 TV콘텐츠로 제작된 영화가 극장에 내걸리는 것이 지당한가, 아닌가다.
▲ “변화의 바람은 막을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은 콘텐츠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을 뿐”
‘옥자’는 제작 단계부터 넷플릭스가 큰 예산을 투자해 극장 상영이 아닌 TV보급용으로 만든 콘텐츠다. 봉준호 감독은 제작 기획 당시, 영화에 필요한 예산이 500억원 가량이라는 너무 큰 규모 때문에 국내 영화 제작사들은 투자 단계에서부터 배제하고 해외 제작사를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예산이 크면 클수록 국내 제작 여건상 ‘옥자’가 봉준호 감독의 네임밸류보다 훨씬 밸류가 약한 다른 영화를 배제해버릴 가능성을 크게 봤기 때문이다.
물론 꼭 국내 제작 여건과 후배 영화인들을 배려해서만은 아니다. 190여개국에 서비스되는 넷플릭스를 통해 보급된다면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넷플릭스 또한 국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옥자’를 이용했다. 봉준호 감독은 앞서 다양한 영화를 히트시키며 국내 관객에게 공신력을 높인 감독이다. 당연하게도 관객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국내 3대 멀티플렉스 브랜드인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반기를 든 채다. 그간 극장 개봉하는 영화들은 이른바 ‘홀드백’ 기간을 거쳐 TV에 입성하곤 했다. 극장 개봉의 수익을 지키며 콘텐츠 제작자와 배급사가 상생하기 위한 방안이다. 그러나 ‘옥자’는 이 홀드백 기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국내 1위 멀티플렉스 업체인 CGV는 상영불가 방침을 결정했으며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상영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같은 극장들의 보이콧에 관객들의 반감은 높아만 가고 있다. 애당초 홀드백 기간은 극장의 수익을 위한 것이지, 관객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극장들이 생존해나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영화 자체의 상영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OTT서비스 배급업체는 넷플릭스 뿐만이 아니며, ‘옥자’와 같은 형태의 콘텐츠가 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이는 영상 콘텐츠들의 새로운 관객 수익 패러다임이 될 수도 있으며, 극장들이 이를 일방적으로 막으려는 행태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 “새로운 독과점 재생산의 시작일 수도”
언뜻 이 같은 극장들의 보이콧은 제 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앞서 지적한대로 OTT 배급업체는 넷플릭스뿐만은 아니다. 어차피 영화의 동시 스트리밍 서비스를 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은 현재 극장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극장들이 지적하는 것은 제 2의 넷플릭스가 출현할 가능성이다. 현재 ‘옥자’의 논란은 단순 서비스 플랫폼에만 맞춰져 있으며, 배급사는 영화 전문 배급사인 NEW다. 그러나 이후 다른 기업이 나서 다른 영화를 제작한다면? ‘옥자’가 성공했고, 그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뿐만 아니라 기획·투자·배급까지 나선다면?
극장들은 OTT 서비스의 주체가 넷플릭스·아마존 등 대기업일수밖에 없는 환경을 지적하며 국내 영화 제작 환경에 대기업이 뛰어들게 되면 벌어지는 일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각 극장들이 이른바 ‘메이저’로 불리며 투자·배급 등에 주력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군소 배급사와 제작사, 투자사 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또 다른 외국 대기업과 경쟁하다가 끝내는 영화 제작 환경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자’는 대기업에 의해 유전자 조작이 된 거대 돼지 옥자를 두고 대기업의 자본주의에 맞서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작금의 상황과 비교해본다면 미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결국 ‘옥자’는 3대 극장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이례적으로 이들 극장이 아닌 대한극장에서 12일 언론시사회를 개최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일지, 혹은 새로운 독과점의 재생산이 될지는 모르지만 ‘옥자’가 한국 영화 산업의 어떤 기념비적 작품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단순 ‘제 밥그릇 챙기기’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와 연결 지어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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