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연진 기자] 올해 초 도시정비 사업에서 열풍을 주도하던 신탁방식의 인기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기존 조합 방식의 병폐를 해결해 주는 유일무이한 대책으로 꼽혔던 것과 달리 최근 신탁방식의 문제점과 부작용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초까지만 해도 서울·수도권에서 재건축 수주를 휩쓸었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감지한 신탁사들은 당초 과열 양상과는 상반된 분위기로 조용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신탁방식을 도입한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서 갈등도 발생하고 있다. 신탁방식 재건축 '서울 1호 사업장'인 용산구 한남동 한성아파트 재건축을 두고 사업자인 신탁사와 일부 주민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도 예의 주시하며 실태조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갈등은 신탁사인 코리아신탁이 사업시행계약 변경을 통해 신탁보수 수수료를 8억원에서 22억원으로 늘리고, 차입금과 이자율을 6억원 3.5%에서 100억원 7%로 인상하면서 발생했다. 이에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변경된 사업 방식과 추가 수수료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기존 조합 방식의 고질병 해결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제외의 유일무이한 대책으로 꼽혔던 신탁 방식의 문제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먼저 도시정비시장 진출로 나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신탁사가 위축된 배경에는 2018년 초 시행될 예정인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하기가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려면 12월 31일까지 관리처분계획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신탁 방식의 재건축이 사업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데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올해 말까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지 못한 단지는 이 제도를 피해가지 못 한다.
신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무조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현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신탁 방식 재건축으로 사업을 완료한 전례가 없어 표준화된 기준이 없는 만큼 신탁사 선정을 위한 주민동의율 75%를 달성하는 첫 단계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던 중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도 신탁계약을 해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토지신탁계약서 21조는 이해관계인 전원의 동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탁사의 귀책사유 없이 신탁계약을 해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탁사 수수료 발생으로 추가분담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신탁 수수료는 대개 분양 매출의 2% 내외로 책정된다. 평균 분양가 10억원 아파트가 1000단지 들어서는 곳이라면 수수료만으로 200억원 안팎이 빠진다.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조합원 몫이 된다.
무엇보다 아직 신탁 재건축은 성공 사례가 전혀 없는 초기 단계다. 관련법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고, 표준화된 기준이 없어 사업자(신탁사)와 주민 모두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서울·수도권 단지들이 앞다퉈 신탁방식을 도입했지만, 막상 사업 속도가 빠르지 않아 혜택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아직 조합원에직접 부담이 되는 수수료나 수익성 문제가 대두되지 않고 있지만,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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