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의 정수, 달을 품은 백자

흰색의 정수, 달을 품은 백자

기사승인 2017-07-19 17:20:14

 

[쿠키뉴스 고령=김희정 기자]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토인(土人) 백영규 작가는 3대째 백자를 빚고 있는 최고의 백자사기장이다. ‘흙 사람’이라는 그의 호처럼, 도자기를 빚어온 60여년은 흙처럼 진득한 세월이었다.

◆ 순수한 마음으로 빚은 백자의 세계
한평생을 빚어온 그의 백자는 고령에서 만날 수 있다. 개진면의 옛 직동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고령요도예전수관은 구석구석 그의 성품을 닮은 듯 정갈하다.

정겨운 복도를 지나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그가 빚은 작품들이 모여 있는 전시장이다. 달항아리부터 갖가지 다완과 가야토기 등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흰색의 달항아리다. 은은하면서 깊이가 느껴지는 빛깔은 눈을 뗄 수가 없다. 순수하면서 고고하고, 정겨운가 하면 엄숙한 자태다.

백의민족이라 불리는 우리민족의 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 앞에 서면 마음의 먼지들이 사라지고 순수해지는 기분이다. 흰색이 우리민족의 순수한 마음이라면 그의 백자는 그 마음을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달항아리를 어루만지며 하얀 한복에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그의 모습도 백자처럼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그의 달항아리는 전통 방식으로 태어난다. 공장의 힘을 빌린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장작가마는 물론이고, 흙도 손수 캐 와서 옛 방식 그대로 수비((水飛·물속에 넣고 휘저어 잡물을 없앰)를 한다. 기계에서 뽑아낸 흙으로 만든 달항아리는 고운 자태만을 뽐내지만, 손으로 거르고 반죽한 거친 흙은 곱고도 깊은 멋을 풍긴다.

그가 진열장에서 조심스레 그릇하나를 꺼내 보인다. 가장 아끼는 우루(雨漏)다완이다. 상아빛 사이사이로 검은 빛이 꽃무늬처럼 번진 모양이다.

 

“초가지붕 아래 흙 담 벽에 빗물이 얼룩진 모양과 닮았다 해서 비우(雨)자 샐루(漏)자를 붙여 우루다완이라 합니다.”

비가 얼룩진 시골집과 담벼락이 떠오르고 그릇에서 따뜻한 고향 풍경이 스친다.

“이 사발은 고려시대 무안에서 만들던 것인데 사람들은 여러 가지 흙을 섞어서 만든 줄 알지만 까만 흙 하나로 빚어낸 겁니다.”

30여 년 전 전라도 무안에서 몇 포대 퍼 와서 만든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 그릇은 더 이상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 자리에 무안 공항이 들어서버렸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잔속에 새겨진 목엽천목다완 역시 신비롭다. 천목은 오래전 중국에서 쓰던 유약인데, 그것을 재현해낸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30여 년을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실제 나뭇잎을 붙여 만들어서 잔 위에 낙엽을 띄워 놓은 듯 선명하다.

◆ 살아있는 도자기의 역사
토인 백영규. 그의 백자는 3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할아버지 백용준씨는 조선후기 고령군 덕곡면 성리가야산 아래에서 도자기를 빚었다. 아버지 백암이씨는 일제강점기 때 후한 대우를 제의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예활동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해방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국내로 돌아왔지요. 고령에 있던 할아버지의 가마를 찾았으나, 허물어진 뒤였어요. 아버지는 그곳에서 가까운 김천에 새로운 가마를 지어 백자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선친의 고향인 고령군에 다시 돌아온 것은 1996년이다. 고령은 예부터 대규모 도요지가 있던 곳이다. 토기로 유명했던 대가야의 도읍지였고, 백자의 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백자를 진상했다.

그는 3대를 이어온 백자의 맥을 백자의 땅에서 다져나가고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도자기를 빚는 아버지 곁에서 흙을 가지고 놀았고, 1954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에게 본격적으로 도예를 전수받았다.

그때가 15살이었다. 시작은 험난했다. 6.25전쟁 후 도예는 사람들에게 잊혀가며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그런 혼돈의 시기에도 그는 도예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경, 이천 등 전국 도예촌을 다니며 막사발부터 청자까지 다양한 도자기를 두루 섭렵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혼신의 노력 끝에 가야토기를 재현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령 백자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전통방식의 도예를 고집해온 결과 2009년 탁월한 솜씨와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백자사기장)에 선정됐다.

그를 살아있는 도자기 역사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지금의 고령요도예전수관은 2013년에 개관했다. 전시실과 다도실, 체험장, 휴게실을 갖추고 있고, 그의 남은 백자의 꿈이 펼쳐질 작업실도 있다. 장작가마는 그가 손수 지었다. 이곳에서 그만이 빚을 수 있는 아련한 흰색 빛의 달항아리들이 계속 태어날 것이다.

shine@kukinews.com

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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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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