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은 2015년 1월에 촬영이 끝났다. 배우 설경구에게는 ‘불한당’(감독 변성현)보다 훨씬 이전에 촬영을 종료한 작품인 셈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속 병수를 연기하기 위해 설경구는 살을 10kg을 뺐다지만, 살만 뺐다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17년 전 살인을 중단한 노인 병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게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준비하면서,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원신연 감독과 참 많이 했어요. 원작은 70대 노인이지만 영화는 두 남자의 대결이 주류를 이루거든요. 그러다 보니 70대 노인 가지고는 대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50대 후반의 병수를 만들어보기로 하고 준비했는데, 분장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얼굴과 동시에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했죠.”
그 때부터 설경구는 ‘캐릭터의 얼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전에 작품을 할 때는 그저 시나리오가 지정하는 캐릭터의 외관에 대해서, 덩치가 크면 살을 찌우면 되고 작으면 빼면 된다고만 생각했다는 것이 설경구의 설명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맡기로 한 캐릭터는 어떤 인생을 살고, 어떤 얼굴을 가지고 살까? 하는 관심이 생겼어요. 물론 관심을 가진다고 연기를 잘하게 된 건 아닌데, 도움은 되더라고요. 하하. 조금이라도 제 연기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의 대표 롤로 기억되는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을 비롯해 최근 그에게 많은 코어 팬을 안긴 ‘불한당’,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설경구의 필모그래피는 대부분 가학과 폭력, 불법으로 채워져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병수는 자신이 세상의 쓰레기들을 치운다는 미명 하에 살인을 자행하는 인물이다. 역할의 선정성이나 범죄자에 대한 이입, 가학성에 대한 고민에 대해 설경구는 “영화에 필요하다면 해야 하지만 무턱대고 즐길 수만은 없다”고 단언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캐릭터의 가학성이 영화에 필요하다면 반영합니다. 그렇지만 고민이 없지는 않아요. ‘살인자의 기억법’도 관객이 보시기에 좀 힘든 장면이 분명 있어요. ‘그런 가학적인 장면이나 액션이 과연 이 영화나 원작과 맞는가?’ 하는 고민을 촬영 전에 분명 했지만 가학성보다는 그런 가학이 자아내는 심리적인 고민과 표현이 더 큰 영화예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설을 가지고만 영화화했으면 영화적 재미는 떨어졌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온갖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이 상업성하고 직결되는 측면이 있죠.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도 어디서 많이 봤던 구도의 대결과 액션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불한당’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을 해 보지 못해서 얼떨떨한 마음으로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더라고요. 대신 좋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어요. 좋은 작품을 한다고 해서 제가 좋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니지만, 더 신중해질 순 있겠죠.”
‘살인자의 기억법’은 다음달 7일 개봉한다.
onbge@kukinews.com